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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벽을 넘어 동등한 교육을 받도록! 베트남 꽝남, 옌베이 지역 소수민족아동 교육지원사업 ④

안녕하세요, 신짜오!세이브더칠드런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2018년부터 베트남 꽝남, 옌베이 지역 소수민족아동 교육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지난 글에서 2019년 상반기의 주요 성과 중 교사∙학부모 교육, 지역사회 활동에 대해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어서 다른 성과들을 소개해 드릴게요.교육환경 개선학교시설 개보수상반기에는 꽝남성 초등학교, 아붕(A vuong)코뮌 내 아렉(Arec)초등학교를 개보수했습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안전한 교육환경 또한 중요합니다.열악했던 학교 시설을 개보수하면서 학생들이 더욱 쾌적하고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게 됐답니다!▲ 교실, 도서관을개보수하여 아동들이 쾌적하고 밝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화장실을 보수하고 세면대과급수 시설을설치해 아이들이 깨끗하게 손을 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위생습관이 개선될 수 있었습니다.▲ 아렉(Arec)초등학교 전체를보수(정문 보수, 울타리 보수, 건물 외벽 페인팅, 교실 앞 공터 바닥 보수 및 배수시설 시공)하여 아이들이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학교가 되었어요교구재 개발옌베이성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교과서와 읽기자료 2,774세트를 지원했고,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소수민족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가 직접 참여해 동화책도 만들었어요. 앞서 소개 드린 읽기 축제에서 학교별로 창작동화를제출해스토리69개를 선정했고, 지난 4월 열린교재 개발 워크숍에서창작동화30개를최종 선정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동화책은 학기 중 인쇄와 배급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쓴 스토리로 동화책이 만들어진다면 책읽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겠지요? 이 프로젝트가아동들의 독서율을 높이고 양질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세이브더칠드런은 사업성과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했어요. 사업 지역의 아동, 교사, 부모들이 직접 출연해 그들이 사는 모습을 담고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특히 ELM과 LB 교수법을 적용한 수업에서얻은 긍정적인 변화가 담겨 있어 사업이 얼마나효과적인지잘전달할 수 있었어요. 사업 대상 학교들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설명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CD로도 제작해 배급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베트남 사무소 홈페이지에 게시된 동영상베트남 교과과정 내 도입 노력 (정부 차원의 ELM, LB 교수법 도입)여러분 중요한 소식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세이브더칠드런은 ELM, LB∙MTBMLE 교수법을 베트남 공교육 내에 제도화하여 전국적으로 교수법을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한 행사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 읽기의 날 행사입니다.​베트남 읽기의 날 행사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6월14일,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 교육부, 사업 대상 지역 교사, 학부모와 학생 등 관계자총 18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읽기의 날 행사를 개최했습니다.소수민족 아동 친화적인독서 환경 만들기가 주제였으며 행사를 통해 세이브더칠드런 사업을 베트남 전역에 알릴 수 있었어요.각종 국영∙지방 매체가 취재해 15개의 플랫폼에 기사화되어알려질 만큼 큰 행사였답니다. 특히, 읽기의 날 행사에서는 행사장 곳곳에 게임과 독서 코너를 마련하여 어린이 참석자들도 행사를 충분히 즐기고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아래 사진처럼행사장 곳곳에서 행사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읽기의 날 행사 사진앞으로는 무얼 하나요?하반기에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보조교사 투입, 가족 읽기 경연대회 등 행사들로 베트남 소수민족 아동들을 위한 교육지원 사업이 더욱 활발히 이뤄질 예정입니다. 사업이2년 차에 접어든 만큼 하반기에는 더 많은 성과들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교자재 출판세이브더칠드런 베트남은 ELM과 LB 교수법 모델이 베트남 공교육 시스템에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오고 있는데요 그 결과 베트남 교육부(MOET)의 정식 승인을 받고 교육부 산하 교사 교육 기관인 ATEA(Agency of Teachers and Education Administrators)가 주관하는 교사 교육 모듈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과정에 있습니다.LB를 기존 커리큘럼에 통합한 교사 교육 모듈은 초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될 예정이며 ELM은 문해 교육을 중심으로 소수민족 아동과 장애 아동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이로써 향후 전국적으로 해당 사업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지난 글에 이어 지금까지 베트남 소수민족아동 교육지원 사업의 2019년도 상반기 주요 성과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고 성과를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여러분의 관심과 후원 덕분에 세이브더칠드런 사업이 베트남 현지에서 소수민족 아동의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앞으로도더 많은 소수민족 아동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주세요!감사합니다!글 해외사업부 박소라사진세이브더칠드런

난민촌에서도 ‘꿈’을 꿀 수 있나요? 기자가 되고 싶은 로힝야 소년

미얀마에서의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의 국경을 넘은 로힝야 사람들이 콕스바자르(Cox’s Bazar)라는 지역에 난민 캠프를 형성한 지 2년이 지났습니다.▲임시배움터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로힝야 아이들2017년에만 약 7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살해당하거나, 강간, 고문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아동도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이들을 반긴 것은 방글라데시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였습니다. 정글이었던 숲을개간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 캠프가 되었습니다. 2017년 이전부터 도망 온 사람까지 합하면 약 1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매년 여름 장마철인 몬순 시즌이 시작되면 사이클론과 홍수가 휩쓸어 버리는 곳.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 구호단체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 납치와 인신매매의 위험 때문에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위험한 곳. 로힝야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하루하루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기자를 꿈꾸는 토말토말(Tomal, 가명)을 만난 곳은 세이브더칠드런이 운영하는 아동친화공간(CFS, Child Friendly Space)입니다. 탈출 과정에서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은 정신적인 충격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아이들은 세이브더칠드런이 운영하는 아동친화공간에서 놀면서 일상을 되찾아갑니다. 토말도 아동친화공간에 나오기 시작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토말은 2년 전의 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토말이에요. 전 14살이고 미얀마에서 왔어요. 처음 콕스 바자르에 왔을 땐 너무 무서웠어요. 여긴 나무가 정말 많은 정글이었거든요. 언제든 코끼리가 나타나서 우리 집을 부숴 버릴지 몰랐어요. 독이 있는 동물도 많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정말 두려웠던 것 같아요. 초기에는 식량을 정기적으로 배급받지 못해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저희 가족은 난민 캠프에 오기까지 이틀이 걸렸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너무 배가 고팠어요. 또 집에서 떠나올 때 옷을 가져오지 못해서 힘들었어요.”▲토말이 노트에 쓴 문장.'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토말은 아동친화공간에서 매일 시간을 보냅니다. 심지어 자발적 아동친화공간 홍보대사가 돼서 길에서 노는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합니다.“처음엔 세이브더칠드런 아동친화공간이 있는지 몰랐어요. 하루는 지저분한 길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형이 와서 말을 걸었어요. 이런 곳에서 놀면 병에 걸릴 수 있다면서 아동친화공간에 오라고 말해줬어요. 거기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울 수 있고 똑똑해질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때부터 매일 나오기 시작했어요. 요즘에는 가게 앞에 멍하니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친구를 보면 아동친화공간을 소개해줘요. 바람이 잘 통하는 멋진 곳이라고 말해주죠”▲토말과 친구들이 아동친화공간에서 놀고 있다.무엇을 배우냐는 질문에 신나서 답변을 이어갑니다.“정말 많은 걸 배워요. 무엇보다 저를 보호할 수 있는 행동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손 씻는 법도 배우고요. 살면서 필요한 기술과 예절도 배우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배워요. 특히 아이들은 아직 배워가는 때니까 동생들에게 버릇없이 얘기하면 안된 댔어요.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우리 같은 남자아이, 여자아이들이 18살이 되기 이전에 결혼하면 안된다는 것도 이젠 알아요.”아이들이 아동친화공간에서 배우는 삶의 지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난민 캠프 곳곳에 스며듭니다. 아무래도 토말이 아동친화공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모양입니다. 토말은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꿈을 털어놨습니다.▲집 안에서 신문을 읽는 토말“저는 나중에 커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우리 로힝야 말고 다른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에요. 기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주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전하는 것처럼 말이죠.”기특하게도 토말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토말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다른 친구들이 신문 조각을 갖고 있으면 꼭 보여달라고 해요. 길에 떨어진 신문지도 주웠어요. 또 사람들이 텐트 벽지로 신문지를 붙여 놓거든요, 저는 그걸 읽어요. 어쩌다 신문 하나를 얻게 되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길에서 단숨에 읽을 때도 있고 바로 집으로 가져가기도 해요.무슨 기사가 나왔을까, 왜 이런 기사가 쓰였을까 고민하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생각해 봐요. 신문에는 납치당한 아이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우리 미얀마 얘기도 나와요. 축구나 크리켓 같은 스포츠 기사도 있죠. 이 기사들을 지금 읽어두면 나중에 기자가 돼서 문체를 따라 쓸 수 있게 될 거에요.”▲신문을 읽으며 기사쓰기 연습을 하는 토말토말은 난민이 된 로힝야 민족의 상황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현했습니다.“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희에 대해 알아야 해요. 저희는 난민이니까요. 방글라데시 정부가 없었다면 저희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또 국제 사회가 로힝야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죽음 외엔 선택지가 없어요. 이 난민캠프에서 죽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희에겐 기자가 필요해요.”요즘 토말의 제일 큰 걱정은 계속해서 공부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15-24세의 로힝야 아동과 청소년 중 오직 7%만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머지 93%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이후 방치됩니다.▲"저는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로힝야 아동 자넷(가명,12살)을인터뷰하고 있는 토말.“이곳에 오면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어요. 저희 삼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위를 갖고 있어요.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교육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배제돼선 안 된다고 했어요.제 또래 친구들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식과 생각을 갖춰야 해요. 더 많은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어요. 로힝야 아이들도 교육을 받아 각자의 삶에서 뭔가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행복 할거에요.”토말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선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로힝야 아이들도 인류의 모든 아동이 가진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폭력 행위의 책임자를 규명하는 한편, 다시는 국제법을 어기지 않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또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토말과 같은 50만 명의 로힝야 아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실질적 지원을 이어가야 합니다.매년 여름 방글라데시의 장마철인 몬순 시기가 되면 홍수와 사이클론의 위기가 도사립니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해주는 집은 대나무와 방수포로 만든 텐트입니다. 하수 처리시설과 전기 공급은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환경 속에 아이들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심각한 호흡기감염이나 설사병과 같은 질병에 취약해집니다.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한 아이가 설사병에 걸리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세이브더칠드런은 콕스바자르에서 활발한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약 2,000명 이상의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함께 아동보호, 교육 접근, 보건영양, 식수위생 서비스, 식량배급 등 로힝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로힝야 아동 10명 중 6명은 보호 지원이 필요한 아동입니다. 착취, 다양한 형태의 학대, 아동노동 및 아동 결혼에 쉽사리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약 24,800명이 사례관리 서비스와 같은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며 이 중 6,000명은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없습니다. 여러 구호단체의 협업과 후원자님들의 도움에도 이 아이들 중 절반만이 사례관리 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열악한 상황입니다.세이브더칠드런은 90개의 아동친화공간와 여아친화공간(GFS, Girl Friendly Space)를 세우고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 50,000명의 아동이 안전한 장소에서 마음껏 놀고, 회복해 다시 아이다운 모습을 되찾고 있습니다. 또한, 마을 지도자들과 인식개선 시간을 마련해 납치, 아동 노동 및 아동 결혼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글신지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사진세이브더칠드런

선풍기 한 대로 더위와 싸우는 아이들

111년 만의 극한 폭염을 기록했던 작년 여름, 기억나시나요? 그 숨 막힐 듯한 더위의 기억이 생생해서, 올해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봄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다행히 작년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 여름에도 38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피해 갈 수는 없었는데요. 온 가족이 선풍기 한 대로 더위와 싸워야 하는 집에서는 여름이 더욱 길게만 느껴집니다.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영 씨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미영(가명) 씨에게 이번 여름은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게다가미영 씨와 5살인 첫째, 3살 둘째, 이제 막 태어난 막내까지 선풍기도 한 대로 더위를 견뎌야 했기에, 모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덥고 습해질수록 아이들 몸에 땀띠가 가라앉질 않아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더워서 잠을 못 잤거든요. 저도 그렇지만 애기들이 더위를 못 참기도 하고요. 그런데 마침 이렇게 후원해주셔서 집이 많이 시원해졌어요. 일반 선풍기보다 더 시원한 것 같아요.선풍기가 한 대 더 있으니까 애들 땀띠가 좀 가라앉더라고요. 그리고 쿨매트 덕분에 잠잘 때 좀 나아요.최근 셋째를 낳아서 일을 따로 못하니까에어컨을 달 수 있는 형편도 안 되고, 냉방용품도 살까 말까 고민했었거든요.세 아이를 혼자 키우기도 쉽지 않고. 이래저래 너무 힘들었는데, 이렇게 지원해 주시니까,고맙죠. 고맙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그냥…. 고마워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미영 씨에게 전달한선풍기와 쿨매트이모와 같이 사는 성훈이성훈(가명)이는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되면서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이모도 지체장애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냉방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웠는데요.성훈이 이모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현관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고 합니다.“올여름에 너무 더워가지고. 창문이 있다 캐도 원체 성훈이가 더위도 많이 타고 땀도 많이 흘리고 하니까. 힘들었죠. 기존에 있던 거는 좀 세게 틀어도 시원한 걸 잘 못 느꼈는데 보내주신 요 선풍기는 우리 집에 있는 선풍기보다 더 시원한 것 같더라고요. 모양도 이쁘고. 깔끔하고. 안 그래도 성훈이가 “이모, 이거 시원한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잘 쓰고 있습니다. 방에 선풍기가 한 대 더 있으니까 너무 좋고. 지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게 잘 쓰고 있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습니다. 부족하지만 조금씩 줄이고 아끼고 그래서 만족하면서 살아야죠.”▲세이브더칠드런에서 성훈이네에 전달한 선풍기10년만에 다시 만난 가족민우(가명)와 민준이(가명)는 아빠와 헤어진 지 10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서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두 형제가 아빠와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혼자일 때와는 달리 아이들과 같이 살게 되면서 사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았습니다.부족한 생활비에 냉방용품을 추가로 사기도 어려워서, 딱 한 대 있던 선풍기를 아이들에게 주고 난 뒤 아빠는 밤새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집에 에어컨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힘들긴 했었어요. 첫째 애가 땀을 많이 흘리고. 둘째는 더워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고 한번씩 그러더라고요. 선풍기 애들 주니까 저는 열대야 오면 잠을 좀 설쳤죠. 선풍기가 한 대 더 늘어나니까 좀 시원해졌어요. 쿨매트는 애들이 눕자마자 시원하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성인 중고등학교 다니고 있어요. 애들이 점점 커가니까 다른데 취직하려고 보니 학력이 모자라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일을 할 상황이 안 되어서 금전적으로 좀 힘들긴 하지만,애들이 할아버지 집에 있는 것 보다 안정적인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더운데 좋은 거(선풍기와 쿨매트)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고맙습니다.”▲세이브더칠드런에서 민우와 민준이네에 전달한 선풍기와 쿨매트“복지관 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청각장애인 부모님과 함께 사는 중학생 윤지(가명)는 여름만 되면 몸이 축축 처집니다.가뜩이나 빠듯한 집안 살림에 윤지 언니 윤희(가명)가 고등학생이 되자 교육비에 쓰는 돈이 더 많아져 선풍기를 새로 사기도 어렵습니다. 윤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언니를 생각하면서, 더운 날에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멘토링과 방과 후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습니다.“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겨울엔 친구들이 제 손 따뜻하다고 막 덥고 그러거든요. 날이 더워지니까 몸이 많이 힘들어요. 특히 집에서 제 방이 많이 더워서 요즘은 엄마 방 가서 자요.이번에 선풍기 한 대를 주셨는데, 실내온도도 표시되고 막 리모컨도 있고 금방 시원해져서 좋아요. 복지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거 진심이에요. 아무나 주는 거 아니라고 들었어요. 저 추천해 주셔서 받을 수 있었거든요.”세 형제의 엄마가 된 할머니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강은(가명)이는 할머니 집에 오고 나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아빠와 함께 살 때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면서 자주 방치되었던9살 강은이와 6살 강우(가명). 할머니와 살게 되면서 강은이뿐만 아니라 17살 형도, 6살 동생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갑자기 세 형제의 엄마가 되어 힘들기도 하지만, 더운 것만 빼면 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입니다.“에어컨은 있긴 한데, 틀면 돈이 너무 많이 나올까 봐 못 틀었어요.올해도 얼마나 더운지. 부엌이 너무 더워서 밥을 먹는데 애들이 땀을 쭉쭉 흘리고 그랬어요. 애들이 즈그 아빠랑 있으면서 안 좋아지고 그래가지고. 아동학대 신고로 어느 기관으로 애들 보낸다고 하길래 데꼬 와갖고 있어요. 좀 힘은 들어도 우얍니까. 남 애 아니고 내 새낀데. 애들 오기 전에는 일하고 살았는데 이젠 못 다니죠.그래도 괜찮아요. 선풍기 보내주셔서 덜 더워지니까 괜찮아요. 시원하게 잘 썼습니다. 한 대 더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고맙죠. 고맙죠.”쿨매트 한 개, 선풍기 한 대가 폭염을 잠재울 수는 없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찌는 듯한 더위로 마음마저 지쳐버린 사람들에게는 여름을 견딜 힘이 되었습니다. 선풍기 바람을 따라 이제 곧 가을바람이 불어오겠지요? 우리 아이들의 삶에도 힘겨운 시간이 지나가고 시원한 계절이 오면 좋겠습니다.모든 아이들이 폭염이나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장 소외된 아이들 곁에 함께하겠습니다.저소득가정아동지원 – 혹서기 냉방용품지원세이브더칠드런은 질병, 자연재해, 가족구성원의 사망, 갑작스러운 소득 중단 등 위기상황으로 인해 긴급 지원이 필요한 아동과 가족을 돕고 있습니다. 위기가정이 폭염에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 산하 지역사회복지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지난 7월 총 500가정에 필요한 냉방용품(선풍기, 쿨매트 등)을 지원했습니다. LG전자케어솔루션에서도 사업비 일부를 후원했습니다. 관심을 갖고 함께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한국화, 이정림(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저도 신입이니까, 많이 배울게요” 안정환·이혜원 가족 홍보대사

20년 전에는 테리우스로, 경기장에서는 반지의 제왕으로, 외국에서는 안느로 불렸던 축구선수이자 해설위원, 방송인 안정환에게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습니다. 바로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입니다. 혼자가 아니라서 더욱 든든합니다. 아내 이혜원, 딸 안리원, 아들 안리환까지 온 가족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오늘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가 된 소감은요?안정환 너무 감사합니다. 최근 들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신입이니까,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구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지 배우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가 된 게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워요.가족이 함께 홍보대사로 참여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안정환 저희가 하는 걸 보고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돕게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세이브더칠드런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이혜원 (남편이) 되게 가정적이에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항상 가족과 함께 해요. 좋은 일 하는 것도 같이하니까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홍보대사님은 어린시절 어떤 아이였나요?안정환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나만 왜 이런지 많이 생각했어요. 불신을가지고 자랐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요.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을 통해 힘든 아이들의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겪어봤기 때문에….평소에도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과 나눔을 많이 하셨는데요. 왜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안정환 여기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라고 쓰여있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세상에 대한 미움과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성인까지 이어지더라고요. 아이들의 생각과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언제부터 아이들을 돕는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이혜원 저는 부모가 되고 나서 애들이 아프면 제가 아픈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남의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보이더라고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내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니까.나눔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안정환 어렸을 때 성공한 사람들만 후원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만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나눔의 크기에는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이혜원 저희 어머니가 목욕봉사를 하셨었거든요. 저도 엄마를 따라 목욕봉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영아원(아동양육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봉사를 시작했어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게 나눔이라고 생각해요.가족을 대표해서 세이브더칠드런을 모르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안정환 아이들이 세상을 잘 모르잖아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고요. 어른들이 돕지 않으면 아이들은 방법이 없잖아요. 저도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부어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아이들을 구하는 세이브더칠드런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인터뷰 중간중간 서로를 바라보는 안정환·이혜원 가족을 보며 위촉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화목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많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아동의 삶을 변화시키고, 아동의 행복을 실현하는 일에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할 안정환·이혜원 가족 홍보대사의 행보를 기대해봅니다.글한국화(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이승재, 김현철, 세이브더칠드런

예멘 스쿨버스 공격 1주기 '하늘에서 로켓이 떨어졌어요'

2018년 8월 9일, 예멘에서 들려온 비보를 기억하시나요? 작년 이맘때, 졸업식을 기념해 예멘 사다(Saada) 주의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떠났습니다. 왁자지껄한 기대를 품은 스쿨버스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 도착합니다.버스가 멈추고 선생님이 빵을 사러 간 찰나, 하늘에서 굉음이 들렸습니다. 바로 사우디 연합군의 전투기였습니다. 순식간에 스쿨버스에 무차별 공격이 가해졌고 불과 몇 분 만에 시장 골목이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이 사건으로 열 살 미만의 아동 40명이 사망했습니다.▲사고가 발생한 뒤 치료를 받은 이스마일의 사진. 이스마일은 유산탄에 맞아 발목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사고에서 살아남은 이스마일(가명, 8세)은 날아온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눈 옆과 다리, 자그마한 발가락에도 파편이 박혔습니다. "전쟁은 나빠요. 사람들이 모두 죽어요. 전쟁은 저주에요. 당장 멈췄으면 좋겠어요." 2018년 당시 이스마일이 인터뷰에서 남긴 말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스마일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비와 교통비를 지원했습니다. 또한 식료품과 장난감, 집중 심리상담을 제공했습니다.1년이 지난 뒤, 다행히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이스마일.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가 치유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이스마일의 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이스마일과 동생들. 이스마일은 나중에 커서 아픈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싶다."이스마일은 활달한 아이였어요. 형들과 축구 하는 걸 좋아했죠. 하지만 그날이 아이를 바꿔놨어요. 무척 예민해졌고 매일 울곤 해요. 아이 엄마가 항상 같이 있어주려 하지만 너무나 깊게 자리 잡은 상처 때문인지 아이 스스로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해요. 달래주려 말을 건네다 가도 되려 저와 아내가 눈물이 터져버려요"▲사고 후 1년, 칼레드의 머리 속에는 아직 파편이 남아있다. 다친 다리 때문에 목발이 없으면 걷기 힘들다.또 다른 생존 아동 칼레드(가명, 12세)는 사고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고 머릿속에 박힌 폭탄 파편이두통을 유발합니다. 파편을 빼내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워합니다. 휠체어를 탈 때 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은 목발이 없으면 걷기 힘듭니다.칼레드는 자신의 고통이 오늘까지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도망쳐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잘 때는 귀를 막고 누워서 잠이 들어요. 또다시 어린아이들을 공격할까 봐 무서워요." 이제 친구들을 보고 싶으면 무덤가에 가야 한다는 칼레드. 어른들이 사용한 폭탄은 아이들의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힙니다.아동에게 더 치명적인 폭발 부상(Blast Injury)전쟁터에서만 사용되어야 하는 폭발 무기(explosive weapons). 하지만 인구가 밀집한 마을이나 도시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무분별한 만행에 아동이 목숨을 잃고, 삶이 뒤바뀌는 중상을 입는가 하면 학교와 병원과 같은 핵심 시설이 파괴됩니다. 2013년 4월부터 예멘의 아동 사상자는 8천여 명에 달합니다. 올해에만 7월까지 아동 416명이 부상을 당했고 200명 가까이 숨졌습니다.약 740만 명의 예멘 아동이 전투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중 430만 명은 긴급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수만 명의 어린이가 폭력과 잔학 행위를 경험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예멘 사나의 아동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에 따르면 79%의 아동이 분쟁으로 인해 심각한 심리적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스쿨버스에 공격이 가해진 장소. 사고 당시의 충격과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그렇다면 폭발 무기란 무엇일까요?폭발 무기란 낙하한 지점을 중심으로 폭발과 파편이 팔생하면서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무기를 의미합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곤 하는 무기는 미사일, 수류탄, 박격포, 지뢰, 사제폭발물 등이 있습니다. 또한, 터지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분쟁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불발탄도 있습니다. 모두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파괴하는 주범입니다.시리아, 예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은 폭발 무기로 고통받는 아동을 만나왔습니다. 비행 공습이든, 매설된 지뢰든 관계없이 아이들의 가벼운 몸은 더 멀리, 더 강하게 내던져집니다. 연약한 뼈는 쉽게 휘어져 기형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들은 혈액을 조금만 잃어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폭발 무기가 사용되는 곳은 대부분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숙련된 외과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이러한 이유로 유엔에서는 사망과 중상을 아동에 대한 중대범죄의 하나로 지정했습니다. 폭발 무기의 공격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신체적 트라우마와 장애를 겪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거나 집이 무너지고,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아이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까지 위협받는 지경입니다.지금 국제사회는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40명의 아동이 숨졌지만 그 누구도 이 사태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변명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세이브더칠드런 예멘 부사무소장 제이슨 리는 "1년 전, 스쿨버스에 탄 40명의 아동이 살해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피해자와 생존자,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한 정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전반에서 아동의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예멘 분쟁의 당사자들은 결과에 대한 아무 두려움 없이 아이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글신지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사진세이브더칠드런

모잠비크 사이클론 이다이 4개월 후, 조각난 희망을 맞추는 힘

열 살 소년 마테오(Matteo, 가명)는 모잠비크에서도 사이클론의 직격탄을 맞은 마니카 주에 살고 있습니다. 사이클론이 상륙한 날, 온 가족이 홍수를 피해 나무 위로 기어올랐습니다. 마테오와 가족들은 나무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꼬박 3일을 갇혀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로 불어난 물이끊임없이 흘러내리며 집과 물건을 휩쓸어갔고, 집안의 주 수입원인 염소가 떠내려가는데도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제대로 먹을 음식 하나 없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꼬박 세 번의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마침내 구조선이 도착했습니다.▲“온 사방이 물이었고 빠르게 차올랐어요. 우리 집 염소도 물에 휩쓸려 갔어요. 그리고 빠져 죽었어요. 그 날 모든 걸 잃었어요.”마테오는 현재 형, 부모님과 함께 임시 캠프에서 지냅니다. 원래 살던 마을과는 불과 2~3km 떨어진 가까운 곳입니다. 마테오는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하는 학교에서 매일 공부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족들에게 텐트를 제공하고 비누, 샴푸, 세제가 포함된 위생 키트를 배포해 청결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마테오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입니다. 아직도 수천 명의 아동이 가족들과 떨어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아이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움을 하기 위해선 후원자님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재난이 발생하자 학교 건물을 약 300명의 이재민과 500명의 아동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이용했다. 해당 기간 동안 학교 교육이 잠시 중단되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사이클론 이다이와 연이어 발생한 사이클론 케네스가 동아프리카 3국 모잠비크, 짐바브웨, 말라위를 할퀴고 지나간 지 벌써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도로, 보건소, 학교와 같은 기반 시설이 여전히 수리 중이거나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바로 식량입니다. 국지성 돌풍과 폭우가 사이클론과 함께 상륙하면서 715,000 헥타르에 달하는 경작지가 물에 잠겼습니다.150만 명의 아동이 재난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기 이전에도 해당 지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가족과 아동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600만 가구 이상이 12~14세 소년 소녀 가장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짐바브웨에서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실종된 7살 소녀를 찾고 있다재난 이후, 수천 명의 아동이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소녀들은 착취, 인신매매, 조혼 및 아동 노동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최고의 방법은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 다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보호팀은 가족과 떨어진 아동을 찾아 필요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또한, 정부와 다른 기관과도 긴밀히 협업해 직계가족을 추적하고 가족의 상봉을 돕고 있습니다.현재 모잠비크에는 950명의 아동이 보호자가 없거나 부모를 잃은 것으로 등록돼 있습니다.세이브더칠드런, 이렇게 지원했습니다!▲헬리콥터로 수송한 구호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지난 3월 모금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 한국 후원자님을 비롯해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후원자님의 성원에 힘입어 재난 현장에서 긴급히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사이클론으로 발생한 재난은 한 번의 대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쳐 꾸준한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한 가정의 삶을 재건할 기회를 만듭니다.모잠비크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새라(Sarah, 35살)는 사이클론 이다이가 발생한 뒤 현장에 긴급 투입됐습니다. 육로로 진입이 힘든 탓에 헬리콥터를 타고 음빔브리(Mbimbiri)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역의 보건 시설과 의약품이 사이클론으로 손상돼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모잠비크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의보건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 새라새라는 음빔브리 지역에서 2주간 아동과 성인 환자의 질병, 탈수증, HIV를 치료하고 출산을 도왔습니다. 혼란한 재난 초기에는 새라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기초적인 서비스조차 없었고 현장 상황을 팀에 보고하려면 한 시간을 걸어 나무 위에 올라가야 전화 신호가 터졌습니다.어려운 조건에도 새라는 아이들의 생존을 돕는 무척 보람찬 일이라고 말합니다.“모잠비크의 주민들은 병원이나 보건소가 너무 멀어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이동식 보건소를 운영할 때 방문했던 한 오지 마을에선 온 마을 주민이 말라리아에 걸려 있었어요. 본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 갈 수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던 거였죠.""사이클론이 온 뒤로 홍수 때문에 길이 끊기고 다리가 무너지면서 병원에 가는 길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마을은 전기가 없어서 밤에 아이를 낳게 되면 횃불에 의존해야 했어요. 2주 동안 여섯 번의 출산을 도운 적도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쌍둥이였죠!▲임신 3개월인 아이다(43살)는 여덟 명의 자녀 뿐만 아니라 부모를 잃은 네 명의 아이까지 돌보고 있다. 아이다가 말라리아 치료를 받고 있다.처음 음빔브리 지역에 와서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몹시 슬펐어요. 그래서 마을에 머물며 돕기로 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이곳 사람들이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겠나?’ 하고 생각했어요. 텐트에 지내면서 해가 뜨면 강에서 목욕했죠. 그리고 보건소에 출근하는 식이었어요. 뱀, 개미, 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아침이면 머리카락에 벌레가 붙어 있는 건 일상이고 비라도 오면 텐트 안으로 물이 들어차는 바람에 매일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죠.하지만 아픈 아이들과 사람을 도울 수 있단 점이 가장 좋았어요.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사이클론에서 회복하는데 이바지한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모잠비크에 소팔라(Sofala) 지역에 사는 마리아는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기 전까지 쌀을 경작했다. 세이브더칠드런으로부터 쌀, 콩, 식용유를 배분받았다.세이브더칠드런의 현지 직원과 유관기관이 협업해 가장 취약한 아동에게 지원을 제공합니다. 현재까지 166,000명 이상의 아동과 성인을 지원했습니다. 국가별로 다음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모잠비크영양실조에 걸린 아동과 임산부가 있는지 조사하고 심각한 영양실조의 징후가 보이는 사람은 보건소 방문을 도왔습니다.단 한 명의 아동도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이동식 보건소가 소외된 지역을 찾아갔습니다.취약한 환경에 놓인 아동을 보호하고 특히 여아의 착취 위험을 낮추기 위해 아동보호 전문가를 투입해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을 진행했습니다.임시 배움터 62개소를 세우고 수업을 위한 학교 비품을 제공했습니다. 9,500명 이상의 아동이 재난 후 상황에서도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짐바브웨아동에게 질 좋은 보건 영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각 가정에 긴급 현금을 지원해 음식과 필수품을 살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식수가 오염되고 우물이 파손되면서 설사병에 걸린 아동의 수가 위험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질병의 확산을 막고 사전 예방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위생 습관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6,000개 이상의 위생 키트와 식수 정화제를 가족들에게 분배했습니다.800명 이상의 자원봉사 보건 인력을 훈련해 영양실조 초기 증상을 보이는 아동을 검진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말라위가족의 수입원이 되는 씨앗, 농기구 및 기타 필수품을 나눠주어 자립의 힘을 키워줍니다. 또한, 주거지 키트를 제공해 가족들이 무너진 가옥을 수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약 1,500개 가정에 긴급 현금을 지원해 스스로 음식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시장의 활성화를 돕습니다.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 캠프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수질 정화 물품을 제공해 삶을 위협하는 수인성 질병인 설사병과 콜레라의 감염률을 낮춥니다.▲육로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은 배로 접근한다. 키림바스(Quirimbas) 섬의 주민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5월 22일 긴급주거 키트, 위생 키트 등을 전달했다.아직 위기는 남아있습니다. 경작지가 물에 휩쓸려나간 탓에 피해 전역의 식량 불안이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계속해서 정부와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력해 대비할 예정입니다.또한,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화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기후와 관련된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울것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을 지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원자님의 지원은 재난으로 조각난 아이들의 세상을 복원하는데 귀중한 도움이 됩니다. 그 어떤 활동도 후원자님의 관심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글, 번역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신지은

난민은 왜 벽돌집에 살면 안 될까요?

전쟁을 피해 이웃 마을로 도망친 돼지 삼 남매가 집을 짓습니다.첫째는 방수 천을 이용해 텐트를 세웠습니다. 더 좋은 집을 짓고 싶지만, 우선은 차가운 밤바람에서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입니다. 둘째는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목재를 사용합니다. 여전히 옆집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릴 정도로 사생활이 보장되진 못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막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폭설이 내렸고 눈이 녹아내리며 온 집 안으로 물이 들이닥쳤습니다. 돼지 삼 남매는 곧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 해, 두 해를 넘기고 수많은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벽돌집을 짓기로 결심합니다.그런데 어느 날 나타난 늑대가 얘기합니다. 난민이 벽돌과 콘크리트로 "반영구 구조물(semi-permanent structure, 5줄 이상의 벽돌로 세워진 건축물)을 세우다니! 시간을 줄 테니 그때까지 집을 무너트리고 방수 천과 나무만 사용해서 집을 짓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해 철거해주겠어!"삼 남매는 눈물을 흘리며 집을 무너트립니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어 혼자 집을 지었던 셋째는망연자실합니다. 집을 세우기까지도 힘들었지만 이미 있는 집을 무너트릴 만한 장비를 구하는 것도,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동화로 각색해본 이 이야기는 실제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레바논 동쪽의 아르살(Arsal)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작은 도시입니다. 시리아 분쟁이 시작되고 난민이 유입되면서 약 40,000명가량의 난민을 품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지역 주민의 따뜻한 환대속에 레바논에 정착하긴 했지만, 도시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시리아 가족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난민이 크게 유입된 초반에는 임시 텐트를 설치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난민 캠프를 세우려면 넓은 공터가 필요했고, 따라서 사유지에 소정의 임차료를 내고 캠프를 형성하게 됐습니다.▲홍수 피해를 입은 레바논 베카 계속 인근의 난민 캠프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겨울에도 소개드렸는데요(관련글), 레바논의 겨울은 폭설이 자주 내리고녹기 때문에공터에 세워진 임시 캠프는 침수 피해를 입기 쉽습니다.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처음 레바논에 도착한 난민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집을 보강해야 했습니다. 매년 텐트에 물이 들어차 옷과 세간이 흙탕물에 휩쓸려버리면 애써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르살 난민 캠프는 한 가구당 평균 세 명의 자녀가 있는 만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집은 포기할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입니다.하지만 지난 4월,레바논 당국이 방수 천과 나무를 제외한 재료로 지어진 "반영구 구조물"을 전부 철거하도록 결정했습니다.▲지침에 따라 다섯 줄 이상의 벽을 부순아르살 난민 캠프벽돌을 5줄 이상 쌓아올린 건물은 철거 대상이 되었고, 만약 스스로 집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군 병력이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 철거를 시행하겠다 공표했습니다. 7월 1일로 최종 기한이 결정되자 약 2,700여 가구가 스스로 집을 무너트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먼저 대상이 된 아르살 지역은해머와 손에 닿는 장비를 동원해 벽과 천장을 부숴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잔해 옆에 허술한 텐트를 세우고 지내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유엔은 이 조치 때문에 약 12,500명에서 15,000명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 중 약 7,500명에서 9,000명가량의 아동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집을 무너트려야 하는 가족들의 불안한 마음은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른바 '여성 가장 정착지(Widow Settlement)'라 불리는 58개 가정의 가족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 피난길에 남편을 잃거나 부모님을 여읜 아동이 함께 의지해 살아가고 있어집을 무너트릴 힘도, 비용도 마련할 수 없어 정부의 조치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집 안에 서있는 마하(23살, 가명)와 샤디(5살, 가명) 모자시리아에서 온 마하(Maha, 가명)는 다섯 살 아들 샤디(Shadi, 가명)와 함께 사는 스물셋의 싱글맘입니다. 삼 년 전 남편을 잃고 국경 도시 아르살(Arsal)에서 콘크리트로 벽을 세운 집에 살고 있습니다. 샤디는 엄마에게 철거가 뭔지 계속해서 물어봅니다. 길에서 자야 하는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는 건지 궁금해합니다. 일주일 전 정부 담당관이 찾아온 뒤로 마하는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했습니다.마하는 집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이와 단둘이 사는 집에 누군가 찾아오더니 집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말했을 때 너무나 힘든 감정을 느꼈어요. 모든 세간을 밖으로 꺼내고 지내던 공간을 무너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수록 말이죠. 방문과 창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콘크리트로 이뤄진 건) 그저 벽일 뿐이에요. 지붕을 한번 보세요. 그냥 천 조각일 뿐입니다.저희는 이곳에 집을 소유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 누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낯선 장소에서 지내고 싶어 하겠어요? 저희는 집으로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이에요. 우리는 죽음보다 나을 것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사마(47살, 가명)는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한다세 아이의 엄마인 사마(Samah, 가명)는 지금의 사태를 '또 다른 이주'라 칭합니다." 시리아를 떠난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야 했습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들과 남편을 땅에 묻어야만 했고요.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안식처가 이곳(여성 가장 정착지)입니다. 여기엔 남편을 잃은 여자들뿐입니다. 남성 노인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노숙자가 돼버렸습니다. 무너진 잔해 속에 세간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말로 다 할수 없을 지경입니다.""우리는 강인합니다. 시리아를 떠나야 했을 때도 굳건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강인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온 건 정착하거나 주인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벽돌이든 방수포든 이런 걸 가진다고 해서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는 커다란 집들을 뒤로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도 우리가 합의한 일이 아니에요. 지금 여름이라 다행이지 겨울에 눈이 쌓이면 1.5미터까지 쌓입니다. 방수포 지붕이 견딜 수가 없어요. 눈 녹은 물이방으로 새어 들어옵니다. 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침수되는 것처럼 말이죠. 대체 방수포로 무얼 막을 수 있겠어요?"▲레바논 정부가 제시한 철거 기한인 2019년 7월 1일 군 병력이 진입해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세이브더칠드런 레바논 사무소장 앨리슨 젤코비츠도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많은 시리아 가족들이 스스로의 손에 장비를 쥐고 집을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리아에서 자신이 살던 집이 무너지는 걸 본 데 이어 두 번째 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붐비는 텐트나 길에서 자는 충격적인 경험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수많은 어머니가 제대로 된 화장실과 샤워시설 없이 한여름에 자녀의 청결을 유지하고 질병에서 보호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합니다.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양동이를 채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챙겨 무너진 집 옆에 두거나 친척 집에 맡겨두고 숙소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명의 난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방치된 채 앞으로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아르살 난민 캠프에서 곧 철거될 건물 벽에 여자 아이가 앉아있다세이브더칠드런은 철거로 집을 잃은 가족들에게 텐트, 방수 천, 목재와 공구로 이뤄진 주거지 키트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쉽게 이동이 가능한 아동친화공간을 세워 지역에 거주하는 난민 아동의 심리 사회적 회복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우선 철거가 진행되는 지역에 집중할 것이며 나이대와 성별에 맞는 물품을 제공해 모든 아동이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 것 입니다.연이은 이주와 주거지 철거 때문에 트라우마가 촉발될 수 있는 만큼 이동식 도서관과 같은 프로그램으로아동의 심리적 회복을 이뤄내기 위해온 힘을 다하겠습니다.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신지은 |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누르 와히드

전문가정위탁부모 이야기② 12년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

재희(가명)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라왔습니다. 재희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시설 운영상의 문제로 아이들은 갑자기 시설을 떠나야 했습니다. 재희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다른 시설이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졌습니다.재희는 갈 곳이 없어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재희에게 이윤경 씨(가명)가 손을 내밀었습니다.“남편과 아이들에게 ‘시설이 문을 닫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3일 내로 (위탁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해서 급한 상황인 아이다. 우리 가정에 적합한지 천천히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 적응하기가 무지무지 힘든 아이일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묵묵히 제 말을 듣던 남편이‘그러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해라. 어떡하겠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면’그러더라고요.”윤경 씨 가족이 재희를 (전문)위탁하기로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10년 넘게 두 아이를 위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3년 전, 윤경 씨는 봉사활동을 다니던 곳에서 6살, 3살 자매를 만났습니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아이를 돌봐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우리 아이들도 밤에 무서워하고 그러는데, 얘들은 얼마나 밤마다 두렵겠어요. 놀라서 깨면 누가 옆에 있어 주겠어요. 조금만 더 잘 키우다 보면 부모들이 다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일텐데. 그 기간만큼이라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하지만 베테랑 위탁엄마인 윤경 씨도 한동안 마음을 열지 않는 재희가 쉽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가정에서 생활해보지 못한 재희는 집이 낯설었고, 엄마라고 부르는 윤경 씨가 낯설었고, 가족들의 관심이 낯설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와도, 아빠가 회사에 출근해도 인사를 전혀 안 해요. 아침에 이름을 부르면서 ‘잘 잤니?’ 인사를 해도 고개를 못 드는 거예요.‘엄마는 너한테 인사했는데 너도 나한테 인사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다가섰어요. 아이와 교감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상황이 반복되니까 벽을 두드리는 것 같고 문 없는 곳에 문 열려는 것 같고….‘나는 이 집에 와서 먹고 자기만 하면 돼. 그리고 아줌마는 키워 준다고 했으니까 키워만 주면 돼. 더 이상은 나한테 들어오지 마’ 재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재희는 평범한 일에도 움츠러들었습니다. 냉장고에 우유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윤경 씨가 ‘우유가 하나도 없네. 우유를 누가 다 먹었지?’하고 혼잣말을 하자 재희는 금세 거짓말을 했습니다. ‘난 안 먹었어요. 나 아니에요.’ 하지만 그날 우유를 먹은 사람은 가족 중 아무도 없었습니다.재희가 우유를 다 먹었다고 말하면 윤경 씨는 분명 ‘잘했다. 니 많이 묵고 얼른 커라’ 이렇게 말했을텐데, 재희는 자기가 우유를 먹어서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윤경 씨는 재희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거짓말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재희한테 ‘오빠도 안 먹었고 엄마도 안 먹었는데. 우유 먹은 걸로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엄마 혼자 하는 말이었는데 니가 두려워서 엄마한테 혼날까 싶어서 그랬을 것 같아. 그런데 니가 말 안하면 난 굳이 안 물을래.’라고 했죠.”재희는 그 날 이후 며칠간 우유는 물론이거니와 밥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윤경 씨는 조심스럽게 추측했습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 크게 혼났던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순간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그냥 넘어가고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밥을 안 먹어요. 처음에는 밥 먹으라고 계속 불렀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방문을 살짝 닫고 들어갔더니 애가 나오더라고요. 아무도 없으면 나와서 막 먹어요. 아마 잘못을 하면 밥을 안 먹었나 보다 생각했어요.”그런 재희를 이해하는 데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전문가정위탁시범사업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아이가) 어떤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예전에 어떻게 컸다는 일지 하나를 본 것도 아니고.아이가 상담 받는 곳에 가서 아이 상태라도 내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나중에는 위탁가정 부모에게도 상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는데, 상담 받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윤경 씨가 재희를 생각하는 만큼 가족 모두가 재희에게 마음을 쏟았습니다. 윤경 씨 남편은 재희가 처음 집에 오는 날 아빠가 있어야 된다며 출장 중 급하게 집에 와서 재희와 함께 식사를 했고, 큰 아들과 둘째 딸은 종종 집에 올 때마다 재희를 막내 동생으로 받아줬습니다. 재희는 윤경 씨와 가족들의 따뜻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어느 날 윤경 씨는 재희가 방을 청소해주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재희도 우리 가족 구성원이니까 자기가 쓰는 방은 자기가 치우게 하거든요.그런데 하루는 ‘내가 오늘은 엄마 방 청소 좀 해 줄게요.’ 이러는 거예요. 이건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는 거예요.전에는 절대 없었거든요. 우리 집 소속이 아닌 것처럼 그랬는데….”변화는 지난 5월 어린이날즈음에도 있었습니다. “재희가 ’어린이날에 저한테 뭐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묻는 거예요. 뭐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까 ‘어린이날에는 이런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자기가 원하는 걸 무조건 요구하고 당연하게 받아야 된다는 것처럼 말했거든요. 밥만 해주면 되고, 자기가 요구하는 것만 해주면 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왜요, 나한테 이런 거 왜 해줘요’ 이랬다면 이제는 ‘그거 해주세요. 나한테도 해주세요’ 이렇게 칭얼칭얼도 하고 ‘와, 세상에 엄마가 최고야’ 이런 표현을 하는 거예요. 종종 그럴 때면 나를 엄마로 받아들였다는 게 느껴져요.” 하지만 여전히 윤경 씨는 재희가 마음 문을 다 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희의 12년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재희 곁에 항상 있을 윤경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입니다.재희까지 벌써 세 명의 아이를 위탁하고 있지만 윤경 씨는 할 수 있는 한 위탁엄마로 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문제 아이들이 많다고 해요. 문제 아이의 아픔을 내가 같이 아파주면 그 애는 덜 아플 거고, 자신의 아픔을 감싸주는 걸 겪은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아이가 될 거잖아요. 나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것 같아요."윤경 씨 말처럼,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아픔을 감싸줄 때, 그 아이들이 다시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학대피해아동을 가정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전문가정위탁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합니다.▶전문가정위탁에 대해 알아보기: 학대받은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요?▶전문가정위탁부모 이야기① “아이가 충분하게 사랑을 확인하고 가면 좋겠어요.”글한국화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재능을 나누는 사람들 ③] 빵빵한 배, 빵빵한 나눔을 실천하는 기빙클럽 '빵빵한 100주년' 후원자 인터뷰

▲ 세이브더칠드런 직원들, 빵사고 후원도 하러 왔어요!▲ 현금으로 모금하고 빵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현금 지참이 필수!▲ 지난 5월에 열린 빵빵한 100주년 라인업. 맛있는 빵들을 100개 한정판매합니다!세이브더칠드런 직원들이 매월 현금을 뽑아 줄을 서는 날이 있습니다. 빵을 사기 위해서인데요. 눈과 혀가 즐거운 맛있는 홈메이드 빵들이 100개 한정판으로 팔립니다. 수익금은 아이들을 구하는데 쓰이죠. 지난 1월부터 매월 100주년을 맞아 ‘일일빵집’ 을 열고 있는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1년 프로젝트로 '빵빵한 100주년' 기빙클럽을 참여하고 있는 후원자.세이브더칠드런과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다고요?2013년 11월부터 약 4년 간 세이브더칠드런 콜센터에서 직원으로 일했어요. 후원자들 전화를 받는 일이니 강성고객들을 만날 일은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세이브더칠드런 콜센터로 이직했었죠.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전화 주시는 후원자분들도 좋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좋아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직장 인간관계에 터닝포인트가 된 곳이에요. 감동스토리도 기관에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니 보람도 많이 느꼈고요. 폐지를 주워 후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연, 아들이 군에서 목숨을 잃고 받은 보상금을 후원하시는 분, 제가 친절히 응대해드렸더니 월 300만원 후원을 결심하신 분까지 여러 사연을 접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었죠.스스로 모금활동을 계획하고 참여하면서 기부하는 '기빙클럽'에 '빵빵한 백주년'이라는 이름으로 빵을 직접 만들어 팔아 참여해주고 계신데요. 기빙클럽은 어떻게 알고 참여하게 되었나요?사실 기빙클럽 참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세이브더칠드런 근무할 때도 참여했어요. 그때도 홈베이킹이 취미여서 직접 만든 빵을 가져가서 동료들과 나눠먹곤 했는데, 기빙클럽으로 빵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했었어요. 콜센터로 학교단위에서 기빙클럽 문의도 종종 들어왔었고 기빙클럽 담당자와도 친해서 기빙클럽은 익히 잘 알고 있었죠. 한 달 동안 기관 2층에 모금함을 놓고 빵을 팔았어요. 초반에는 매일매일 만들어 팔다가,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팔았습니다. 그렇게 70~80만원 가량 모아서 스쿨미캠페인에 후원했어요. 당시 100개 기빙클럽이 모여서 코트디부아르에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인 '2014 스쿨미 기빙클럽'에 참여했거든요. 이번 기빙클럽 이름은 '빵빵한 백주년'이잖아요. 그때는 'with 에드가 노'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제가 비올리스트 에드가 노 님을 좋아하는데, 이 분이 후원도 하시고 무료 공연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제게 기빙클럽에 참여할 동기부여가 되었던 분이기도 해서 이름을 넣고 싶었어요. 그분께 먼저 그래도 될지 여쭤보았는데 본인의이름으로 좋은 일을 해주어 고맙다며 자신이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다고 흔쾌히 승락했어요. ▲ 100개 기빙클럽이 함께한 아프리카 학교 짓기 프로젝트, 2014 스쿨미 기빙클럽의 마무리 행사 모습.학교짓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고 100개 기빙클럽이 모여서 마무리 행사를 했는데 그때 에드가 노 님이 오셨어요. 다른 연주자도 동행해 오셔서 연주를 해주셨어요. 정말 특별한 기억이었어요. 그 후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를 했었는데 세이브더칠드런이 올해 100주년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참여하게 됐어요.▲ 빵을 구매하고 기빙클럽 모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 왼쪽에는 기빙클럽을 홍보하는 패러디 포스터.구매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매번 메뉴가 바뀌던데 어떻게 메뉴를 정하시나요?메뉴, 포장, 가격 선정까지 고민 많이 했어요. 주 고객이 젊은 여성층이고, 근처 상수역이 있어서 핫한 베이킹 맛집이 많다보니 수준도 높아요. 그래서 맛있는 아이템인 줄 알지만 손이 많이 가서 시중에 제품화 되지 않는 아이템, 트렌디한 아이템을 만들기로 했어요.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책도 사보고 유명한 유튜브도 보면서 메뉴를 개발합니다.▲ 인기리에 늘 완판되는 케익류 아이템.맨 먼저 메인 메뉴를 정해요. 크림, 케익류로 재료비가 많이 들죠. 예쁘고 유니크한 컨셉으로, 공도 많이 들어요.다음으로는 재료비를 상쇄하면서 손이 덜가는 메뉴를 잡아요. 쿠키 1종, 머핀 1종 정도로요. 머핀은 한 판에 12개를 구울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워요.▲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유니크한 머핀과 쿠키.좋은 재료를 쓰고 포장은 과하지 않게 알맹이에 신경쓰자는 마음으로 만들고 있어요.빵을 사드시는 분들이돈을 내는 것이 아깝지가 않다라는 마음이 들도록 퀄리티에 신경을 쓰게 돼요.제빵을 따로 배우신 거에요? 실력이 상당하신데.독학이예요. 학원에서는 기초적인 것을 오래, 체계적으로 가르치는데 학원비도 비싸요. 저는 영업할 것도 아니여서 그 돈으로 이왕이면 더 좋은 재료, 다양한 재료에 도전하려고 해요.인터넷에서 찾은 오픈 레시피를 직접 만들어서 먹어봐요. 달고 싱거운게 주관적일 수 있거든요. 생각나는 대로 응용해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기빙클럽 준비하는 한 달 동안 시험용 쿠키, 머핀을 엄청 많이 구워요. 이런 경험이 쌓여 나만의 오답노트가 돼요. 10개 정도 메뉴를 잡고 여러 상황을 감안해서 메뉴를 추리고 각각 테스트로 1개씩 만들어봐요. 이렇게 소량의 조정한 레시피를 만들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하나 더 만들죠.빵맛, 메뉴 선정에 숨은 조력자가 있으시다고요.사실 저는 빵을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만드는 걸 좋아하지. 체중조절도 해야해서 간만 보는 정도죠. 남편도 빵을 안 좋아해서 시식평이 냉정한 편이에요. 치즈를 좋아해서 치즈가 들어간 메뉴는 시식해주지만 호불호가 확 갈리는 편이에요. 집에서 빵을 먹는 사람이 없다보니 남편이 회사에 가져가서 나눠주기도 하는데요. 맛있다고 하시는데 그게 정말 그런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예전 동료가 많이 도와주세요. 그분도 지금은 퇴사하셨는데 근무할 때도 친하게 지냈거든요. 만나서 시식도 함께 하고 조언해주고 메뉴 정리도 도와줘요.그런데 아쉽게도 6월부터는 빵빵한 100주년이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들었어요.주재료로 크림, 초콜릿이 많이 들어가는데 날이 더워지면 재료가 잘 녹아요. 더운 시즌인 6월에서 9월까지는 하고 선선해지는 10월부터 다시 개시할 예정입니다. 하다 보니까 기빙클럽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떠오르네요. 참여하는 모두가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예전 기빙클럽할 때 4행시를 받아서 익명으로 스티커 투표를 했어요. 스티커를 많이 받은 분께는 따로 주먹밥과 과일이 담긴 도시락을 싸 드리기도 했죠. 다시 '빵빵한 100주년' 개시하게 되면, 중간 이벤트도 열어보고 싶어요.베이킹 쪽으로 전업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더 예쁘고 좋은 품질의 빵을 만들고 싶어서 베이킹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12월까지 100주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짓는게 제 목표이고요. 빵을 만들어서 돈을 벌기보다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재미있게 해볼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시즌에 맞는 메뉴, 예를 들어 겨울에는 당근, 대파가 맛있는데 당근케익, 대파머핀을 만들어서 계절 별로 기빙클럽에 참여할까해요.후원자 님처럼, 재능으로 봉사하고 후원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후원하면 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느끼는 보람이 상당히 커요.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에 나오는 명장면을 같이 나누고 싶어요. 해외의료봉사를 하러 간 의사가 현지아동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후원을 시작하는데요. (이 후원으로)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그 아이의 삶은 바뀔 거고, 그건 그 아이에겐 세상이 바뀌는 일일 거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와요.나의 도움으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뀐다면, 누군가에게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민하지 마세요. 누군가를 도왔을 때 느끼는 보람은 상상 그 이상이에요.▲ 빵빵한 100주년 패러디 포스터To be continued... 10월에도 빵빵한 나눔 이어지길 기대합니다~!대단한 재능이 아니어도 괜찮아요~학교나 직장, 어디에서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당신의 창의력으로 아동을 구하고 싶다면, 기빙클럽으로 함께해요♥ - 세이브더칠드런 기빙클럽 담당자글 김하윤(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어린이마라톤

5세 미만 영유아 살리기
온 가족이 참여하는 세상에서 가장 쉽고 즐거운 나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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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에 대한 전쟁을 멈춰라

분쟁 지역 아동의 안전과 교육 보장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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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하는기념일

다양한 기념일을
기부로 기억하는 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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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당신도 무심코 던진말로 아이에게 상처주고 있진 않나요?
말로도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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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호/인도적지원

세이브더칠드런의 인도적지원 활동은
재난 발생 72시간 내에 즉각적으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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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지켜라

대한민국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실컷, 맘껏
놀 수 있도록 놀이환경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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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살리기 캠페인

후원과 직접 뜬 모자로
아프리카, 아시아 아기들을 살리는 참여 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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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빨간염소 보내기

아프리카 가정에 염소를 지원하여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고 경제적 자립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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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아 학교보내기 캠페인

빈곤, 사회적 악습, 편견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아프리카 여아들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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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 세계 모든 아동, 마지막 한 아동까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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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결연후원

결연아동의 성장단계에 맞춰
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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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가게

도움이 절실한 아동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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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단체 후원

기업에 맞춘 사회적 책임 실천과
사회 공헌 방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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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후원

노블리스 오블리주로서
아동의 삶에 더 큰 변화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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