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3월, 경남 산청에서 시작해 지리산 국립공원 인근까지 번진 산불은 온 국민의 마음을 애타게 했습니다. 9일 만에 진화가 완료됐고, 그제야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산불은 금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불 피해를 입은 가정은 이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피하느라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은 옷가지 하나부터 모든 걸 새로 구입해야 합니다. 정부의 지원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이재민들은 임시 숙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더 막막하기만 합니다.
▲화재 당일, 대피소에 물품을 지원하는 세이브더칠드런 직원
산불 피해를 입은 아동 가정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책가방, 아이 옷, 음식 등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정마다 아이마다 필요한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산불 피해를 입은 아동의 가정에 공통으로 가장 필요한 것, 바로 긴급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피해 가정 83곳에 아동 1명당 200만원을 지원한 긴급생계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원내역
항목 |
대상 |
세부내역 |
총 지원금 |
긴급생계비지원 |
전소(집이 다 타버린) 가정의 피해 아동 |
83가구(아동 134명) |
257,000,000원 |
저도 후원자였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지민 씨(가명)는 전화를 받지 않는 남편을 구하러 대피하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1분만 늦었어도 불구덩이 속에서 남편을 구하지 못했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애들한테는 최대한 바닷가 근처로 도망가 있으라고 했어요. 헤어질 때 애들이 '아빠 데리러 가다가 혹시 엄마가 위험하면 아빠 포기하고 와’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거의 현실이 될 뻔했어요. 근데 남편이랑 같이 애들 찾으러 가는데 길이 막혀버린 거예요. 중간에 애들이랑 전화도 끊기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마을에 불이 계속 번져서 방파제 쪽으로 피신했고, 배를 타고 나와서 애들을 찾아다녔어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다행히 저희가 있으라고 했던 곳에 아이들이 있었어요.”
▲지민 씨가 보내온 피해 사진 (전소한 집)
그때 당시를 회상하는 지민 씨의 목소리에 떨림과 안도가 동시에 묻어났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기상황은 지나갔지만 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집은 전소했더라고요. 저희가 민박을 했는데, 당연히 예약도 다 취소됐고요. 세금, 전화비, 보험료, 식비…. 마이너스 통장이 순식간에 불어나고....”
여러 곳에서 물품 지원은 많이 받았지만 아직 정부에서 확정된 지원금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급한 건 생활비였다고 합니다.
“물품도 물론 감사하죠. 그런데 중복되는 것도 많고 필요 없는 것들도 있었거든요. 막막하던 그때 세이브더칠드런에서 400만 원이 들어와서 진짜 너무 감사했어요. 우선 마이너스 통장을 좀 메꾸고, 저희는 애들이 많다 보니까 생활비로 거의 썼어요. 식구가 많다 보니까 빨래도 하루에 몇 번씩 돌려야 해서 세제 사는 데 쓰기도 하고요.”
▲지민 씨가 긴급 생계비로 구매한 물품
지민 씨는 10년 넘게 여러 단체를 후원해왔다고 합니다. 후원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지민 씨의 목소리에는 생사를 넘나들던 산불의 위기를 회상할 때보다 더 큰 떨림과 눈물이 묻어났습니다.
“다섯 군데 정도 정기후원해왔는데, 작년에 생활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후원을 중단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후원해 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진짜 그 돈 덕에 발등에 떨어진 불 껐고요. 저도 이 상황이 좀 해결되고 나면 곧 다시 후원 시작할 거예요. 아이들도 고마워해요. 아직 아무 지원이 확정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수건 한 장부터 새로 사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큰 힘이 됐어요.
선우(가명) 씨는 갑작스럽게 번진 산불에 두 아이를 데리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아이들 책가방도 챙기지 못했다고요.
“방송도 못 들었어요. 밖에서 누가 문 두드려서 알았어요. 긴급 대피 문자는 받았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걱정 안 했거든요. 근데 바람 타고 금방 넘어오더라고요. 겨우겨우 차 타고 나가긴 했는데 길이 다 통제돼서 새벽까지 못 빠져나갔어요. 차 안에서도 불이 보였어요. 길 가다 보면 차가 뒤집어져 있기도 하고, 타고 있는 차도 있고. 우리 차에도 불붙으면 어쩌나 불안했어요.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산불 현장의 충격이 컸는지 아이들은 며칠간 꿈을 꿨다고 합니다. “집이 불에 타는 꿈을 꿨다면서 하루 이틀은 애들이 많이 울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많이 막막했죠.”
▲선우 씨가 보내온 피해 사진 (전소한 집)
수건 한 장, 칫솔 하나 다 새로 구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우 씨는 세이브더칠드런의 긴급생계비가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집도 없고, 당장 사야 할 게 많더라고요. 속옷도 없고, 옷도 없고. 물품 지원도 물론 고마웠지만 물품은 실제로 어디 쌓아둘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현금 지원이 정말 유용했어요. 필요한 걸 저희 형편에 맞춰 살 수 있으니까요. 책가방, 실내화, 봄 옷, 속옷, 내복 이런 걸 다 살 수 있었어요. 휴대전화도 불에 타서 새로 샀고요.”
▲선우 씨가 후원자분들께 쓴 편지
▲선우 씨의 아이들이 후원자분들께 쓴 편지
선우 씨에게 긴급생계비는 단순히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고 합니다.
“후원해주신 분들께 진짜 감사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피해 초기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눈물 날 뻔했어요. 모르는 분들이 이렇게 큰돈을 보내주시니까, 상황이 너무 막막했는데 큰 힘이 됐어요.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많이 됐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긴급 생계비가 한 줄기 빛 같았어요.
정현(가명) 씨는 이번 산불로 직접 지은 집을 잃었습니다. “철근 하나부터 기초공사, 인테리어까지 제 손으로 다 했는데. 전부 타버렸어요. 사실 어제 병원에 가서 진정제를 맞았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요.”
▲정현 씨가 보내온 피해 사진(전소한 집)
정현 씨가 받은 충격만큼 대피 과정에서 아이들의 충격도 컸습니다. “마을에 다 불이 붙었더라고요. 그때 상황이 말로 잘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긴박했어요. 중간에 가스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아이가 크게 놀라기도 하고. 민간 구조대가 우리를 배로 구조할 때까지 바닷가 끝에 갇혀 있었죠.” 아이들은 아직도 밤에 무섭다며 깰 정도로 충격을 많이 받아 요즘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겪어보기 전엔 저도 몰랐어요. 집도 다 잃고, 생계도 막막하고. 다시 시작하자니 빚뿐이에요. 정부 지원은 아직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하고요. 바다일 하던 어구도 다 손실이고, 고기 잡는 것도 힘들어요.”
▲정현 씨가 구조될 때까지 아이들과 대피해 있었던 곳
정현 씨는 옷가지 한 장 건질 수 없었던 막막한 상황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의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한 줄기 빛 같았어요. 필요한 걸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어요. 구호 물품은 고맙지만, 가정마다 필요한 게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초코파이를 많이 보내주셨는데 저는 당뇨가 있어서 먹을 수가 없었거든요. 긴급생계비로 아이 학비와 병원비에 쓰고, 생업 도구를 사는 데 썼어요. 통발 사고 어구 사고요. 긴급생계비 덕분에 당장 먹고 살 수 있게 된 거죠. 장사 준비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요.”
정현 씨는 감사 인사를 전하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날, 너무 감사해서 울었어요. 아직 집도 복구 안 되고, 모든 게 날아가 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지원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후원해 주신 분들께 정말 정말 감사해요. 정말 큰돈이었어요. 저도 나중에 후원할 수 있게 됐을 때 꼭 하려고요. 정말 한 줄기 빛이었어요.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첫 번째로 현금을 지원한 NGO,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은 산불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빠르게 현금을 지원한 NGO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관계를 잘 형성하고 있고, 평소에도 여러 지원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아동센터나 교육지원청과 함께 도서관 환경을 개선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해당 기관과 빠르게 협업해서 피해 아동을 파악해 긴급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긴급구호를 담당하는 아동권리사업팀의 홍용균 매니저는 긴급 생계비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동이 있는 가정에는 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마다 필요한 것이 달라서 적합한 물품이 가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현금은 아동이 원하는 물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에요. 알러지가 있을 수도 있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정에서 맞춤형으로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현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장 빠르게 아이들을 지원한 만큼, 가장 오랫동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힘쓰려고 합니다. 홍용균 매니저는 “현재 파악된 피해 아동이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생계비 지원을 비롯해 심리치료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집이 불에 탄 경우에는 직접 보금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산불이 지나간 자리가 까만 잿더미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그곳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집을 짓고, 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산불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의 마음도 가정의 상황도 다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이 계속해서 아이들 곁을 지키겠습니다.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글 한국화(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산불 피해 아동 가족 /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