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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 긴급구호 활동가의 일기

긴급구호 2021.12.07

엘리스는 재난 상황에서의 교육 전문가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교육 부문 선임 어드바이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4일,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지역 사회의 혼란이 이어지자 용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진 발생 이후 불과 2주 만에 아이티 현장 파견을 자원한 것입니다. 엘리스는 재난 복구 과정에서 교육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지역 사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이티에 도착한 엘리스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니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큰 충격에 빠진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듬을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티에 도착한 엘리스는 학교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서 재난을 겪은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심리적 응급처치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마음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니 조금 낯선 개념이지요? 긴급구호 활동가이자 교육 전문가인 엘리스의 하루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아이티 지진 현장의 하루 

6:00 AM

창문 밖에서는 수탉이, 방 안에서는 알람 시계가 울린다. 토요일 아침인 오늘은 지난 6일간 진행한 심리적 응급처치 교사 연수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아이티 내에서도 가장 오지 지역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던 곳이다.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연이은 일정으로 피곤이 쌓였지만, 오늘 하루도 정말 기대된다.


지진 같은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교육 어드바이저의 역할이 있다. 모든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공부를 이어갈 수 있으려면 아동과 가족 그리고 교사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은 재난 이후에 학교에 돌아가기 무서워할 수 있다. 이때 심리적 응급처치를 활용하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안심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집중적인 보호나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아동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심리적 응급처치를 배운 뒤에는 아동과 가족들이 적절한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암석으로 가로막힌 도로 옆을 구급차가 지나가고 있다.



6:45 AM

현장으로 출발했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지진의 피해 정도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활동하는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는 하나뿐이다. 그나마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지금은 이곳저곳에 금이 가 있어 굉장히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거대한 암석이 차도를 가로막아서 앞에서 오는 운전자에게 알리기 위해 도로는 경음기 소리로 시끄럽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통제될 때도 있다.


8:15 AM

산사태 구간을 지나면 비포장도로에 접어든다. 나는 자주 멀미가 나는 편이라 음악을 들으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아이티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녹음이 짙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산사태 이후로 짙은 흉터처럼 잿빛 땅이 드러났다. 산자락을 한참 돌아가면 길거리 곳곳에 임시 천막이 눈에 띈다. 지진으로 집을 잃었거나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집에서 나와 길에서 지내는 가족들이 살고 있다. 집, 상점, 교회였던 건물들이 거대한 돌무더기로 변했다. 돌무더기 앞에 꽂혀있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보인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장소이거나,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기를 바라며 표시한 흔적이다.


 무너진 집 한켠에 임시로 주거지를 세운 아이티 주민들. 잔해 속에서 모아온 주방도구가 눈에 띈다.



| 마음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9:25 AM

오늘 방문한 학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지진을 피해 갔다. 이곳에서 불과 15분 떨어진 학교는 완전히 파괴돼 지진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몇 주 전, 아이티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주민이 무너진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건축 엔지니어와 함께 무너진 학교와 지역 사회의 피해 규모를 파악하던 중이었다. 학교의 피해 현황을 분석하는 엔지니어의 말을 황망히 듣고 있던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하필 새 학기를 한 달 여 앞둔 시점이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교장 선생님은 간곡하게 지원을 요청했었다.


지역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들이 오늘 진행할 심리적 응급처치 교육에 참여할 예정이다. 산간 지방에 사는 선생님들이 교육에 참여하려면 2시간을 넘게 걸어오기 때문에 우선은 다 함께 든든한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지진으로 벽이 무너진 학교. 건물 곳곳에 금이 갔다.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



10:30 AM

아침 식사로 에너지를 보충한 뒤에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오늘 나의 목표는 선생님들이 어제 배운 이론을 실습할 수 있는 즐겁고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심리적 응급처치(PFA: Psychological First Aid)는 공감을 실천하는 치료법이다. 이 교육을 통해 재난 이후 트라우마의 징후를 보이거나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찾아낼 수 있다. 아동을 존중하면서 침착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아동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이고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다. 


오늘은 현지 파트너 NGO와 함께 ‘심리적 응급처치 슈퍼스타’라는 게임쇼를 기획했다. 참가자들이 팀을 나눠서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아동의 역할을 맡는다. 다른 팀은 심리적 응급처치의 주요 원칙을 적용해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돕는다. 모든 그룹에는 숨겨진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겁에 질린 아동, 모든 상황에 무심해 보이는 청소년, 혼비백산한 부모처럼 응대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배치된다. 그룹별로 돌아가며 무대에 나와 상황을 연기하다 보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 선생님이 건강해야 학생도 건강하다

13:00 PM

오늘의 슈퍼스타를 발표한 뒤에 선생님들의 심리적 건강을 다루는 세션을 이어갔다. 이곳의 선생님들 역시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이 많다. 어려운 상황에 새 학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지진 이후, 현재 겪고 있는 경험을 비롯해 학교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제안했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선생님들에게 괴로운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지역 사회와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관계에 힘입어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차례로 일어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내 나는 절망과 죽음 속에서도 유머와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티인들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산사태에 고립되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흙더미에서 이웃의 시신을 꺼내는 것을 도와야 했다. 무너지는 집에서 탈출하다가 가족이나 본인이 다친 경우도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한편, 당황한 와중에 세탁 세제를 다 들고 뛰어나왔다든가, 산사태에 산채로 묻히지 않으려고 나무 기둥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몸소 재연할 때면 좌중이 웃음바다가 됐다. 몇몇 선생님들은 심리적 응급처치 교육 덕분에 다시 교단에 설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덕에 내 마음도 뭉클했다.



 요나스(10살), 리카도(8살), 예슬라(7살)은 할머니 안젤린(56살)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날 세 남매가 물을 뜨러 간 사이 집의 벽이 무너져 할머니는 팔을 크게 다쳤습니다. 안젤린은 집의 무너진 곳을 방수천으로 덧대야 하지만 아이들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해당 가정에 긴급 재난금을 지원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14:45 PM

교육 평가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려면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차 안에서 동행한 동료와 교육의 긍정적인 결과를 공유했다. 오늘의 전체 평가는 5점 만점에 4.6점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일주일간 92명의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교육할 수 있었다. 학교가 다시 문을 열 때 학생들을 지원할 준비가 된 선생님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음 주에 실제로 문을 열 수 있는 학교는 5개 중 1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학교가 아직 공사 중이거나 재건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푸른 산자락과 청록색 바다, 그리고 지진의 잔해가 창문을 스쳐 지나간다. 노래를 들으며 반쯤은 선잠이 든 상태로 다음 주의 활동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빠르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직후,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한화로 약 1억 1,700만 원을 긴급 지원했습니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은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이 학교 재건에 직접 참여하도록 독려해 재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더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원이 시작된 뒤로 교실 11개를 완공되었고 아이들의 교육도 다시 시작됐습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후원금을 모아주신 후원자님 덕분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제 교실 55개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 번역 신지은 (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의 발 빠른 긴급구호 지원
마음을 모아주신 후원자님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