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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식수 위기 현장 출장기 '기후위기 속 물을 지키는 사람들'
해외사업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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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으로 일상이 무너진 방글라데시. ‘세계에서 가장 기후위기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 7위’라는 수식어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생명의 근원인 ‘물’이 오히려 주민들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장 시급한 문제인 식수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사업을 담당한 신윤 매니저의 출장기를 통해 물로 인해 삶이 바뀌고 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지난해 사이클론으로 물에 잠긴 사트키라 지역의 가옥과 뿌리 채 뽑힌 나무 


지난 2월, 기후위기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사트키라 지역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벵골만에 접해 있어 해수면 상승의 피해가 반복되는 지역입니다. 작년엔 심한 사이클론으로 출장 일정이 취소되기도 했는데, 마침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 제방을 넘어 밀려드는 바닷물은 이미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드럼통과 널빤지로 만든 임시 다리를 건너며,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사이클론, 홍수 등 재난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대피소로 피신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일상이 됐습니다. 언젠가 마을이 잠기게 되면 고향을 떠나 이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기후위기x MBC 아시아 프레스투어] ③ 현실판 ‘워터월드’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꿈까지 잠긴다


 

▲  임시로 만든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신윤 매니저



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충격은 높은 유산율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닷물이 유입돼 오염된 식수가 유산율 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지하수로 염분이 스며들어 식수원이 오염되는 일이 잦아지죠. 마을의 한 아주머니가 “지난 달에도 아이를 잃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기후위기의 가장 잔인한 얼굴은, 늘 그렇듯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죠.


세이브더칠드런은 사트키라 지역에서 기후위기로 가장 시급한 분야를 ‘물’이라고 파악하고, 지난 2023년 식수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안전한 식수를 구할 수 없던 지역에 식수 시설을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우물’을 만드는 사업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업의 중심에 마을 주민을 두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직접 만나본 ‘물 관리 위원회’와 ‘여성 이용자 그룹’과의 만남에서 사업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그린라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린라이트#1 

기후변화의 피해자에서 실천가로

 

▲  가정 내 안전한 식수 활용을 독려한 여성 물 이용자 그룹 멤버들




다섯 살 아들을 보낸 뒤, 딸은 여섯 달 넘게 설사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깨끗한 물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돈 주고 사 먹는 건 엄두도 못 냈었죠.


물을 긷는 가사 노동은 대부분 여성과 아동의 몫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사트키라 지역에 사는 3대 모녀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게요. 40여 년 전 결혼해 이제는 할머니가 된 수미트라(59세, 가명)씨. 그녀는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두 아이를 하늘로 먼저 보낸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다행히 건강하게 자란 셋째 아들이 결혼해 손녀가 태어났죠. 하지만 물로 시작된 불행은 대를 이어 내려왔습니다. 며느리인 라트나씨는 임신 기간 중 이질에 걸려 심각한 복통을 경험했고, 손녀까지 설사병에 걸리는 어려움을 겪었죠.




▲  식수에 인체에 치명적인 비소가 들어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여성들

 


수미트라씨 가족에게 물은 세대를 이어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2023년 12월, 세이브더칠드런의 식수 시설이 설치된 이후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더는 설사약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죠. 라트나씨는 앞으로 살아갈 딸을 위해서라도 마을의 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라트나씨는 여성 이용자 그룹의 열정적인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웃 여성들도 안전한 물 관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인식 개선 활동에 적극 나섭니다. 최근에는 식수 안전 등급을 색깔로 표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직접 수질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마을의 여성들은 점차 물 관리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만 받는 게 아니에요. 

배운 것을 공유하면서 지역사회를 돕고 있습니다.


세대를 잇는 여성들이 보여준 회복력은 지역 사회 변화의 출발점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 [기획특집] 안전한 식수가 바꾼 마디아의 마을



그린라이트#2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 지역사회 리더십

 

▲  물 공급시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한 도로 정비 (비포/애프터)



지난 수년간 핀그리 지역은 오염된 저수지 물에 의존해왔고 이로 인해 질병이 만연했습니다. 콜레라로 형수님을 잃은 압둘 씨(70세, 가명)는 지역사회 내 수인성 질병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압둘 씨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사업이 시작된 뒤 핀그리 지역의 물 관리 위원회의 멤버로 자원했죠. 마을 어른으로서 참여한 압둘 씨는 지역 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식수 저장 시설을 위한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 소유주를 찾아가 설득하고, 심지어는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마드라사에 물 공급을 확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땅을 기꺼이 내주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안전한 물이 부족해 오랜 시간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늘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물 관리 위원회 활동을 통해 기회를 얻은 거죠.


 

▲  현지 직원과 함께 식수 저장 시설을 둘러보는 신윤 매니저



압둘 씨의 역할은 계속됐습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열어 그간 방치되었던 저수지모래여과 시설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물 관리 위원회의 정기적인 회의를 이끌며 지역사회 주도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죠.


압둘 씨와 같은 리더들이 있어 사업은 단순한 시설 지원을 넘어 지역 주도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을마다 조성한 물 관리 위원회는 상호 방문을 통해 학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요. 다른 마을에서 재난에 대비해 물 저장 시설을 설치한 것을 보고 필요성을 깨달은 뒤 적용하는 좋은 사례도 생겼습니다. 지역사회가 직접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분명 거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물을 지키는 사람들과, 그들의 손에서 지역사회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곁에 우리가 함께 서야 하는 이유를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던 출장이었습니다.



글  신윤(국제사업부문)  편집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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