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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난민 5년 희망과 불안의 줄다리기 속 난민 캠프에 가다
긴급구호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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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집도가 매우 높은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지난 6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 캠프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정기적인 사업장 방문이 어려워진 지 2년. 오랜만에 사업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동안 경험해온 그 어떤 출장보다도 더 큰 반가움과 기다림으로 가득했습니다.


난민 캠프가 위치한 콕스 바자르의 지역의 도로와 공항, 주변 건물들은 불과 2~3년 지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발전하고 변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민 캠프는 2년 전 방문했던 당시에 시간이 멈춘 듯 보였습니다. 여전히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수년 째 국적 없이, 1년이면 썩어서 허물어야 하는 대나무 임시 가옥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난민 캠프에는 고향에 돌아갈 날에 대한 희망이 곳곳에서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벌써 5년째, 난민으로 살아가는 삶이 길어지는 하루하루만큼 귀국의 희망도 잦아들 수밖에 없는 상황. 희망과 불안의 줄다리기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난민들의 삶을 한껏 느끼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희망을 잃어가는 로힝야 난민의 삶


 2021년 대형 화재로 집이 소실된 가정에 지원된 새로운 주거지를 둘러보는 모습



지난 몇 년간 국제사회는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등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로힝야 난민들의 절박한 상황은 대중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전세계적인 식량난, 매년 발생하는 자연 재해까지 로힝야 난민의 삶은 바람잘 날 없었습니다.  복합적 요인이 한데 얽히며 로힝야 난민의 일상 회복은 더욱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안한 환경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합니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에 놓인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한 마음은 절박함을 낳습니다. 아동의 교육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많은 아동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립니다. 국적 취득을 위해 성인이 채 안 된 아동을 결혼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극심한 생활고와 스트레스로 보호자가 아동을 버리고 떠나는 일도 생기곤 합니다. 


로힝야 난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동은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처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중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슬픈 소식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심이 줄어드는 만큼 지원금 또한 줄어드는 현실입니다. 매년 3만 명이 새롭게 태어나는 로힝야 난민 캠프, 인도적 수요는 그대로인데 도움의 손길은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아동을 보호한다는 것


 (좌) 아동 클럽 활동 내용을 설명하는 난민 아동들 / (우) 아동보호 인식 개선 캠페인을 준비하는 아동 클럽


세이브더칠드런이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가장 잘하는 구호 활동은 바로 아동보호 활동입니다. 로힝야 난민 캠프 곳곳에도 아동의 심리적 안정을 지키는 아동친화공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아동 클럽(Child Club)’을 운영합니다. 아동 클럽에 참여하는 아동들은 세이브더칠드런의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합니다. 놀이, 공예, 아동 보호 캠페인 기획, 아동 권리/보호 행동 교육, 생활 기술 교육 등 놀이와 참여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아동 권리를 배우고 실천해갑니다.


아이들도 조혼, 아동노동, 폭력 등 지역사회의 위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친구의 안타까운 사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듣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아동 클럽은 아이들이 이런 어려움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안전한 모임이 되어 줍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아동권리 침해 상황을 줄일 수 있을지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보는 거죠. 제가 방문한 아동클럽에서 활동 소개를 부탁했을 때에도, 아이들은 흔쾌히 벌떡 일어나서 막힘없이 멋지게 설명 해내곤 했습니다. 무력 분쟁과 폭력을 피해 가까스로 국경을 넘어온 아이들이 몇 년이 지나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고 품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감동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좌)지역사회 아동보호 위원회와 세이브더칠드런 사례관리팀의 도움으로 학대와 방임에서 벗어난 아동과의 인터뷰 / (우) 아동보호위원회, 아동보호 자원봉사자, 사례관리 담당과의 인터뷰



해가 진 뒤에는 외부인의 난민 캠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자리를 비운 시간에도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중요합니다.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선 부모님과 지역사회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로힝야 난민캠프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 아동보호 전문팀과 아동보호위원회, 자원봉사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역할을 분담합니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난민 캠프에도 조혼과 방임, 보호자 분리 사례와 같은 여러 아동보호 리스크를 가져왔지만, 적어도 사업이 진행되는 난민 캠프에서는 아동을 지키려는 필사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출장에서는 아동보호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그룹과 모두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파악한 문제를 공유하고, 적절한 해결책과 방지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다소 허술했던 아동을 위한 보호막이 시간과 함께 촘촘해지고, 실제로 위기 아동을 구해낸 사례들을 들으면서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난민을 받아들인 이웃을 위하여


 콕스 바자르 난민 캠프 관할 지역의 아동보호 담당국 경찰과 논의하는 이승현 인도적지원 전문가



한편, 하루아침에 백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맞이한 방글라데시도 큰 변화를 마주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콕스바자르 지역의 취약 계층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난민에 더 집중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주된 생계 수단인 관광업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난민 캠프와 바로 맞닿아 지내는 지역사회에서는 난민의 존재만으로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국경 지역과 난민 캠프 인근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도 지역 사회의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하는데 한몫했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마음으로 난민을 맞이했던 지역 주민들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엔 동정론이 일던 여론도 조금씩 더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정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아동도 건강하고 단단하게 자라나기 쉽지 않습니다.



 아동클럽 활동을 통해 직접 기획한 조혼 방지 캠페인을 소개하는 마리아(가명)



난민을 받아들인 지역사회의 토대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취약한 방글라데시 아동에게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대부분 가정의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식솔을 덜거나 지참금을 받기 위해 아동을 결혼시키거나, 가장 먼저 교육비를 줄이면서 학교에 가는 대신 일을 해야하는 상황도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사업 담당자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아동을 직접 돕는 아동보호 사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때론 아동을 둘러싼 환경을 개선하는 통합적 접근법이 더 필요하고 훨씬 효과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세이브더칠드런은 위기에 놓인 것으로 파악된 아동의 가정 환경을 조사해 생계 활동을 지원합니다. 부모의 생계 활동을 도움으로서 가정의 경제 상황에 숨통이 트이면 자연스럽게 아동의 보호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보호 및 생계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카말의 가족


이번 출장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아동 카말(가명)의 가정이 좋은 사례였습니다. 코로나19 락다운(봉쇄 정책)으로 생계가 완전히 끊겨 어려워진 카말의 가족은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카말도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같이 물건을 팔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위기 아동으로 파악된 카말의 가정에 생계 지원 프로그램 참여를 권했습니다. 똑똑한 카말이 학교를 그만둔 것이 늘 마음 아팠던 어머니의 참여 의지가 정말 높았고, 긴급 지원금을 받자마자 절반은 바로 교육비로 지출했습니다. 


남은 지원금을 종잣돈 삼고,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업 교육을 토대로 조금씩 여러 경제 활동에 도전해보던 카말의 부모님은 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동네에서 맛있는 빵을 파는 유명한 가게의 주인장이 되었습니다. 함께 방문한 동료들과 하나씩 사서 입에 넣은 카말 빵집의 빵 맛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그러나 한 아동이 노동을 멈추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가정이 안정적인 삶을 조금씩 되찾고 있게 된 것에 대한 뿌듯함이 더 오래 달큰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장사 준비가 한창인 카말 빵집의 부엌 풍경.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받아 화덕과 무쇠솥, 가스통 등을 구입했다.



곧 로힝야 난민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됩니다. 적어도 하루쯤은, 많은 사람이 잊혀진 난민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아주 작은 관심도 현장에서 일하는 인도주의 전문가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난민 위기 상황과 줄어드는 국제사회의 관심에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 어떤 아이들도 잃어버린 세대로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긴급구호와 로힝야 난민 인도적지원에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후원자님 덕분에 수십만 명의 아동이 비록 열악한 난민캠프이지만 배불리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안전하게 뛰어 놀고, 그렇게도 원하던 공부를 계속하며 최소한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저희는 재난 상황에서도 모든 아동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승현(국제사업부문) 편집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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