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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파견직원의 일기 '메마른 땅에도 싹트는 희망'

해외사업 2022.02.25


 에티오피아 국가사무소에서 바라본 아디스 아바바 풍경


낯선 나라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첫날.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 (13 Months of Sunshine)라는 슬로건답게 따뜻한 햇살이 파견지에 도착한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활기 넘치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모습만으론 이 나라의 한쪽에서 지독한 가뭄과 내전, 경제위기와 코로나의 위협 등 복합적인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이면서 국내에서 원격으로 사업을 관리하다 보면 보고서와 온라인 회의로만 사업 현장을 접하게 됩니다. 마침내 파견을 통해 담당하는 지역사회를 방문하자 머릿속에 흩어져있던 구슬이 실에 꿰어지는 듯한 희열을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현장의 메마르고 절박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물을 모아두는 집수조가 말라붙어 바닥을 드러냈다. 

오래된 기후위기, 메마른 가족들의 삶

세이브더칠드런은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아동과 가족을 대상으로 인도적 지원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특히 에티오피아 소말리 지역에는 기후 위기에 따른 환경 변화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018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 교육, 식수위생, 아동보호 등 통합 지원사업으로 아동과 가족의 삶에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건조한 사막에도 장마철인 우기가 있습니다. 1년에 2번이나 우기가 있는 지역이지만 지난 2년간 평균 강수량에 미치지 못하는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심각한 물 부족이 발생하면 아이들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는 학교가 아닌 물을 구하는 일이 됩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거주지를 이동하는 유목민 부모님을 따라서 이주하다 보면 교육의 기회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특히 사회 문화적인 요인으로 여성 청소년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식량위기의 어려움을 조혼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현실을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위) 에티오피아 디기노 지역 학교에 새로 지은 화장실 (아래) 아다들레 지역의 아동친화공간에서 노는 아이들


Build Back Better 더 나은 미래를 짓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위기 상황 속에서 교육을 제공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인도적 위기 상황 속에서는 아동의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할 권리가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학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학교를 통해 아동에게 교육, 보호, 식수위생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아이들이 더 희망적인 미래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가뭄으로 고통받아온 아다들레(Adadle) 지역의 국내 실향민 캠프를 방문한 날입니다. 이날 따라 분위기가 들썩인다 싶더니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장기간 학교가 문을 닫은 동안 세이브더칠드런은 원격 교육을 위해 각 가정에 태양열 라디오를 지원했습니다. 어렵게 집에서 공부를 이어가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 온전히 한 학기를 마친 기쁜 날이었죠. 마침 올해는 학교 옆에 아동친화공간을 새롭게 열었습니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무엇이 좋아졌는지 물어보지 않더라도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아이들이 먹을 학교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변화

사실 지역 주민들이 처음부터 아동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아동친화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도 부족한데 무슨 놀이 공간이냐며 세이브더칠드런이 헛된 자원을 낭비한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마을의 부러움을 사는 자랑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아동친화공간이 생긴 이후 아이들의 수업 집중력이 좋아졌고, 또래 간 다툼도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놀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아동친화공간이 주는 안정적인 심리 사회적 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인 교실 옆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퍼져 나왔습니다.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리실에서 아이들이 먹을 한 끼 영양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학교 14곳에 급식과 학습 키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육청 담당자들은 이런 지원 덕분에 타 학교와 비교해 출석율이 높고 중퇴율이 현저히 낮다고 말했습니다.




 생리대, 속옷, 빨랫비누 등 여아 위생키트를 지원받은 에티오피아의 소녀들 


여성 청소년에게 꿈과 자긍심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아위생키트를 지원받은 여성 청소년들과의 대화였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여자 아이들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속옷, 생리대, 빨랫비누 등이 들어있는 위생키트를 지원합니다.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월경 기간에 결석률도 높아지고 활동의 제약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자 아이들이 월경 중에도 위축되지 않도록 도와 자존감과 존엄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월경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아 학교 출석과 공부하는 목표를 얘기해보았습니다.


임시 배움터가 생기기 전엔 매일 가사를 도우며 언젠가 엄마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 외에는 다른 꿈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낯선 아이들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도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재난 상황에서도 회복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자존감이 피어났습니다. 더욱이 아동으로서 나의 권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인도적지원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방문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직원 


기후 위기로 에티오피아의 가뭄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식수 부족과 식량위기, 그로 인한 교육기회 박탈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여성 할례가 80% 수준에 달하며 조혼이 빈번하게 행해지는 등 여자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관습도 넘어야 할 관문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앞으로도 이런 문제를 지역사회와 함께 풀어나가는 활동을 지속할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은 뜨거운 13월의 햇빛을 받으며 꿋꿋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익(인도적지원 & 기후위기 대응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메마른 땅에서도 희망이 싹틀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권리를 기반으로 사업을 추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