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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동이 부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긴급구호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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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시인, 윤동주. 여러분은 윤동주 시인이 평생 한국에 살았던 날이 4년에 불과하단 사실을 아셨나요? 29세로 짧은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윤동주 시인은 만주 북간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고향 땅을 떠나 조선인 이주민 3세대로 살아야 했던 윤동주 시인의 삶. 우리가 사랑한 시인의 어린 시절은 ‘난민’이자 ‘이주민’의 신분으로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 윤동주 시인과 그의 작품을 모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표지

 

고향집

- 윤동주-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그럼에도 그는 ‘고향’을 노래하는 시인이었죠.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국땅을 밟아본 적 없는 윤동주 어린이는 내 집, 내 고향을 떠나 살아야 하는 이웃들의 고된 삶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윤동주는 언제나 남쪽 하늘을 그렸으며 평생 떠돌며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시로 노래했습니다. 뿌리 뽑힌 채 떠도는 어려운 삶 속에서 쉽게 쓰여진 시에 부끄러움을 느꼈지요. 전쟁, 식민, 이주… 어른들이 만든 상황들에 이 어린이의 잘못은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윤동주 어린이처럼 고향을 떠나 지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2022년 중반 기준, 분쟁, 폭력, 위기로 집을 떠나온 전 세계 이주 아동은 3,650만 명에 달합니다. 연간 35만 명에서 40만 명에 가까운 아동이 난민으로 태어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역대 가장 최고치를 기록한 숫자입니다. 이 중 난민 인정을 받거나 신청중인 아동은 1,370만 명이며 그 외에도 분쟁과 폭력을 피해 국내에서 실향민이 된 아동이 2,280만 명입니다. 


더군다나 지난 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내에서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주변 도시와 국가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아동과 가족은 1,400만 명. 우리나라의 경기도 인구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아 월레스와 그로밋을 제작한 스튜디오 아드만과 함께 애니메이션 한 편을 공개했습니다. ‘홈(Home)’이라 이름 지어진 영화는 난민 아동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작품입니다. 친구와 가족에게서 떨어진 난민 아동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과 더불어 아이들이 새로운 난민 친구를 환영하고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영상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그라미 모양의 주황색 캐릭터입니다. 삼각형 모양의 보라색 캐릭터들이 사는 세계에 도착한 동그라미 캐릭터는 삼각형의 언어와 음식을 마주하며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느낍니다. 삼각형 캐릭터들이 하는 말도, 음식도 모든 것이 낯선 상황. 하지만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점차 환영 받는 것을 느끼고, 보라색의 세계에 주황색의 작은 폭발이 일어납니다. 단조로웠던 보라색의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다양해집니다. 모든 형태와 색상의 다양한 캐릭터들과 함께 활기찬 세계로 변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홈'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분쟁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됐지만, 전쟁과 기근, 박해로 인해 집에서 쫓겨난 모든 아동을 돕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작업하면서 아동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할 때 겪는 어려움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가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동과 친구들에게 공감하게 함으로써,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영향을 깨닫고 서로를 격려해주기를 바랍니다 피터 파크, 영화 ‘홈’ 감독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등 폭력과 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난 수백만 아동은 오늘도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분쟁 12년


▲ 지진으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시리아 난민 야날 씨와 두 자녀 


최근 튀르키예와 함께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는 12년간 이어온 분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아이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전쟁과 함께 보냈습니다. 지진 이후로 최소 8만 6천 명이 새롭게 피난민이 된 것으로 집계됩니다. 대다수가 이미 분쟁으로 한 번 이상의 이주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야날(44세, 가명)씨의 가족은 지난 2월 발생한 지진으로 집을 잃었습니다. 이미 시리아 알레포에서 분쟁을 피해 한차례 피난을 떠나온 뒤 5년간 지냈던 집이었죠. 겨우 북부 지역으로 피난을 왔지만 이번 지진으로 또 다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지진으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지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아내 또한 친정으로 피신해 지금은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처음 지진을 피해 왔을 때 정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진 이후로 아들이 심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어요. 병원에 가서 영양실조 치료식을 한 박스를 받아왔지만 아이를 먹이려면 한 달에 열 박스는 있어야 해요. 예전에는 콘크리트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다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모든 추억과 귀중품이 사라졌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건강함에 감사합니다.” - 야날, 시리아 난민




▲ 새로 정착한 이탈리아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시라즈


12년간 전쟁이 진행중인 시리아를 떠나 이탈리아에 머무는 시라즈(가명, 11세)는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았습니다. 시라즈의 가족들은 아버지의 사망 이후 레바논 난민 캠프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났습니다. 시라즈와 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여러 일을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라즈의 사례를 유엔난민기구에 이관했고 이후 이탈리아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텐트에서 7~8년 가까이 살았어요.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매우 슬펐어요. 내 친구들, 가족들, 사촌들과 떨어졌고, 이곳의 언어는 달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집이 있고 더 이상 텐트에 살지 않아요. 추위나 물이 밖에서 새어 들어오지도 않아요. 아이들은 전쟁을 경험해서는 안돼요. 전쟁을 경험하면 나쁜 생각을 흡수하게 돼요. 생각이 공격적으로 변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 계속 전쟁만 보니까 스스로를 위해 좋은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워요. 레바논에 살 때는 동생들과 매일 일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시라즈(14세, 가명)


올해로 13년 째에 접어든 시리아 분쟁. 아동 약 6백만 명이 전쟁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 중 백만 명은 이웃 국가에서 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삶 그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기 위한 교육입니다. 현재 시리아 아동 240만 명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으며, 학교를 다니는 아동 중 160만 명도 코로나19, 경제 위기 등 여러 요인으로 중퇴의 위험이 있습니다.



예멘 분쟁 8년

▲ 지뢰 폭발에서 생존한 마하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예멘은 지난 8년간 내전을 경험한 국가입니다. 여전히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폭발물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조심해야 할 모든 발 밑(Watching Our Every Step)’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지뢰나 불발탄과 같은 전쟁의 잔해로 죽거나 다친 아동이 199명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포탄, 수류탄, 박격포, 로켓, 폭탄이 아동의 작은 몸에 평생 동안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아동은 주로 집 밖에서 놀거나 집안일을 돕기 위해 땔감을 구하거나 가축을 돌보러 나갔다가 지뢰와 폭발물 잔해를 마주치게 됩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 속에서 무기를 식별하는 경험이 부족해 피해가 큽니다.


예멘 분쟁을 피해 국내 실향민이 된 마하(10세, 가명)와 마야(16세, 가명) 자매의 삶은 2022년 10월 영원히 뒤바뀌었습니다. 요리를 하기 위한 땔감을 찾아 나섰다가 지뢰를 밟은 것입니다. 운 좋게도 병원으로 즉각 이송됐지만 마하는 왼쪽 눈을 잃었고 오른손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언니인 마야도 왼쪽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가 경험한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요. 특히 사고의 기억이 저를 힘들게 해요. 그땐 제가 죽은 줄 알았어요. 저한테 초능력이 있다면 전쟁을 끝내고 도시를 안전하게 만들 거예요. 우리 도시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를 안전하게 할거예요. 전 세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 마하, 지뢰 생존 아동


몇 개월간 가족의 삶은 황폐화 해졌지만 시간이 흘러 마하는 회복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10살 소녀의 마음에는 다시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처럼 지뢰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으로 일하는 누룰라 사데키 대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입니다. 2021년 8월, 탈레반의 집권 이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미군 기지가 위치한 카불 공항 내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약사로 일했던 경험 때문입니다. 누룰라 대리의 두 딸은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는 조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성별 분리와 복장 규제를 이유로 여아의 중등 교육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아 2명 중 1명은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빈곤,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도 아동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아동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심한 경우 빚을 갚기 위해 자녀를 돈과 맞바꿔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 가족도 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저와 아이들에게 꿈과 같았어요. 사진과 비디오를 보여주며 아주 좋은 곳으로 간다고 얘기했어요. 공부도 할 수 있고, 폭력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사람들도 친절하다고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아이들은 많은 제약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자유롭지 못해요. 소풍과 같은 외출도 즐기지 못하며 집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 누룰라 사데키 대리






▲ 폭우가 내려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의 난민촌이 물에 잠겼다


지금도 전 세계 난민 아동은 분쟁, 기후변화, 빈곤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난민의 절반 이상을 받아들인 이웃 국가들 역시 대부분 가난한 저소득 국가입니다. 대규모로 유입된 난민 아동의 교육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죠.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의 부담을 전 세계가 함께 나눠야만 합니다. 한 세대의 난민 아동에게 교육이 주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니까요.


윤동주의 시가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닿을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글을 가르쳤던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맥락이 다르고, 인종과 종교가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아동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국가에 태어나 현재 어디에 살든 우리의 아이라는 마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난민 아동 또한 건강하게 성장해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글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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