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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완치됐어요” 의료비 지원 아동이었던 이보라 씨 인터뷰
국내사업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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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에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의료비 지원받았던 이보라인데요”

유난이 바람이 차던 12월 초, 세이브더칠드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7년 전,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으로 수술을 받았던 이보라 씨가 올해 완치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아동이었던 보라 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반쯤은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는데, 세이브더칠드런 덕분에 수술할 수 있었고 올해는 완치판정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후원자분들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보라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라 씨가 뇌전증으로 발작을 일으킨 건 돌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발작은 때로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지속됐고,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도 없었습니다. 발작하는 동안 보라 씨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업시간에 갑자기 탁구공을 입에 집어넣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몰랐어요. 제 모습을 알 수 없으니까 친구들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학교에 다니던 12년 내내 왕따였어요. 근거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돌았고…”


병원에서 뇌파를 찍어도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해 보라 씨는 7살 때부터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만 먹었다고 합니다. 부작용으로 30kg~40kg 넘게 체중이 늘었지만, 약을 먹는 것 외에 발작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때 언니의 권유로 간 병원에서 ‘좌측 측두엽 해마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찍었던 MRI를 가져갔더니 수술을 하러 왔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측두엽 해마 쪽을 잘라내야 한다고요.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어요. 서러워서요. 17년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어서요. 치료할 수 없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수술을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하니까…



수술을 하면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고, 기억력이 떨어져 공부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어서 대학을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보라 씨는 결국 대학 등록금과 수술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가족들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대학을 포기할 건지, 수술을 포기할 건지요. 가족들 몰래 원서를 넣었는데 신기하게 붙었어요. 장학생으로 합격했는데 등록금을 주는 형태가 아니라 1학기에 얼만큼의 성적이 나와야 그 해 6월쯤에 지원한다는 거예요.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보라 씨는 여섯 살 위의 언니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로는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어머니는 허리디스크로 일할 수 없어 언니가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수술하기 전에 필요한 검사도 언니가 모아둔 돈으로 겨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어요. 옷 가게, 화장품 가게, 떡볶이집, 주차 요원 등등…. 언니가 학원을 보내줬는데 그게 점점 미안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저 때문에 너무 많은 돈을 병원에 썼어요. 부모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요. 죄책감을 엄청나게 달고 살았죠. 검사비만 거의 천만 원이었는데, 언니가 일찍 취업해서 벌어놓은 돈으로 검사를 받았어요


검사 후 수술 날짜를 잡았지만 수술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집을 팔아도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언니는 세이브더칠드런에 연락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후원금이 아이들을 돕는 데 쓰일지 의심했거든요. 저는 안 되겠지 싶었어요. 반쯤 포기한 상태였죠. 그냥 평생 약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모두가 못 믿었어요. 형부는 농담하지 말라고 했어요. 진짜 기적이었죠”



수술은 쉽지 않았습니다. 뇌 해마 부분을 크게 잘라내다 보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중환자실에서 보름을 보냈습니다. 의식을 찾은 후에도 뇌전증이 완벽하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약을 먹어야 했고, 약 부작용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머리에 크게 남은 흉터는 다시 마음에 상처를 냈습니다. 하지만 보라 씨는 수술이 아니었다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병이 완치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합니다.

“주변 뇌를 계속 죽이는 병이었거든요. 그때 수술하지 않았다면 더 크게 잘라내야 했을 거예요. 수술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요


수술 후 지난 7년간 보라 씨 마음 한쪽에는 늘 세이브더칠드런과 후원자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고요. 그러던 중 보라 씨는 뇌전증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다시 가게 되었고, 7년 전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병원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살리기>캠페인 홍보 부스도 보라 씨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병원에 환우들에게 편지를 쓰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제가 받은 도움이 떠올랐어요.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술 후 완치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보라 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덕분에 새 삶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제는 약을 안 먹어도 되잖아요. 수술 전에는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어요. 발작을 일으키면 숨을 데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으니까요. 이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편안하게 잘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해요. 전에는 왜 나만 아파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는데, 지금은 나 말고도 아픈 사람이 너무 많구나 생각해요. 후원에 대해서도 믿지 못했었는데, 이젠 저만큼, 그리고 저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한테 후원금이 쓰이는구나 싶어요.


이십 대 중반의 여느 청년처럼, 보라 씨는 새롭게 일할 곳도 구하고 이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금 넓은 집에 가서 저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책도 보고, 기타도 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시 공부하고 싶긴 한데, 다른 쪽으로 해보고 싶어요. 제 꿈은 싱어송라이터예요. 제 삶에 대한 노래를 쓰고, 직접 쓴 곡을 부르고 싶어요. 큰 무대나 방송이 아니어도 되니까…” 

보라 씨는 언제 아팠냐는 듯 활짝 웃었습니다. 오랜 시간 질병으로 아프고 외로웠던 보라 씨가 다시 꿈꿀 수 있게 된 것은 함께해주신 후원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라 씨와 같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한 아동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내아동의료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질환에 구분을 두지 않고 증상이 있는 아동에게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전국 각 지역의 주요 종합·전문병원 40여 곳과 협력합니다.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화(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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