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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아동 토론회 ① “제일 힘든 건 사는 거 자체” 난민 소녀 할리마의 호소

사람들 2018.07.26

[난민아동 토론회 ①]


“제일 힘든 건 사는 거 자체” 

난민 소녀 할리마의 호소


세이브더칠드런이 6월 20일 난민의 날을 맞아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국내 난민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세이브더칠드런이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난민아동지원사업’ 8년의 성과를 중간 점검하고 국내 난민아동 지원의 방향성과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를 통해 난민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한 한국사회의 현실과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토론회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난민아동’을 키워드로 토론회에서 오간 다양한 논의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할리마(가명)의 꿈은 통역사입니다. 

한국어를 독학한 실력으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따로 돈을 쓸 필요도 없이 인터넷이 선생님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곱창과 내장탕입니다. 매운데 맛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불고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은 귀엽고 멋지고 노래까지 잘하는 강다니엘. 강다니엘 이야기만 나오면 입꼬리가 씰룩이며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게 역시 팬심은 숨길 수 없나 봅니다.


“야, 킹콩아!” 초등학생일 때 친구들은 할리마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매일 울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쳤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대신 이를 악 물고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친한 친구도 생겼지만, “너의 나라로 돌아가.” “니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무서운 말들이 책상을 가득 덮는 날들도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니네 나라로 꺼져.”라고, 친구들에게 “같이 다니면 이렇게 까매진다.”고 소리치는 할머니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두렵고 창피한 마음보다 친구들의 나들이를 망친 미안함이 더 커 할리마는 그날 손바닥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넌 예쁘고 아름답다.”고 “자기들한테는 없는 거라 너를 많이 부러워하는 거.”라고 위로해주는 엄마가 없었다면 할리마는 그 수많은 날들을 어떻게 버텨냈을지 모르겠습니다.


난민의 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가 끝나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할리마(가명)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세계난민의 날, 이날 열린 토론회에서 할리마가 어렵게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태어나 11살까지 자란 아프리카의 한 난민촌을 떠나 2012년 추운 겨울날 한국 땅을 밟은 할리마. 한국에 오기까지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난민촌에서 받은 난민인정증서도 있지만 한국은 아직 할리마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7살 나이에 “겪으면 안 되는 일을 너무 많이 겪으며” 자란 할리마에게 제일 힘든 건 “사는 거 그 자체”입니다.


문제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할리마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난민 신청자 수는 9,942명. 2004년 148명에 비해 67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7년 난민 신청자 중 18세 미만 아동은 3.6%인 357명. 한 해 신청자 수만을 따진 이 수치는 난민 신청을 아직 못 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아이들의 수는 반영하지 못합니다. 


난민 협약국 평균 38%에 크게 못 미치는 4%의 난민 인정률. 이 높디 높은 벽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몇 년에 걸쳐 난민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 땅은 모질고 혹독합니다. 난민 신청자에게도 기본권 보장을 위해 생계, 주거, 의료,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지원은 극히 미미해, 2017년 기준 정부의 생계비 지원을 받는 난민 신청자는 3.2%에 불과합니다. 처음 6개월은 취업이 금지되고 이후 직업을 얻는다고 해도 불안정한 일용직이 대부분인지라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는 일도 막막합니다.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불안정, 언제 다시 돌려보내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삶에 돌아갑니다. 실제로, 2013년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난민지위가 불안정할수록 아이들이 언어 발달과 사회성 발달에 지연을 보이고 우울 점수가 평균보다 높아지는 등 건강한 성장,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난민아동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자 위협받습니다. 분유나 기저귀와 같은 필수품도 부족할뿐더러 돈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2010년 난민아동지원사업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연령대별로 가장 필요한 것부터 지원했습니다. 영유아에게는 기저귀와 분유 등 양육비를, 미취학 아동에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보육비를, 초중고등학생에게는 교육비를 지원했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기본적인 권리에서조차 배제된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 불허판정 후 체류 기간을 초과한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난민아동 증가 추세를 반영하듯 2010년 20명에 불과하던 지원아동은 2017년 205명으로 늘었습니다.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사업으로 난민 부모님들의 숨통도 조금 트였습니다. 2017년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한 아동 중 미취학 아동 130명, 취학 아동 50명 등 모두 180명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양육비 지원을 통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의료 지원이 가능해져 자녀의 건강상태가 개선됐다.’고 답했습니다. 양육비 지원 전 자녀 양육에 대다수의 부모님들(95.2%)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보육료 지원으로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되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더 잘 어울리고’ ‘언어를 배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교육비를 지원하기 전에는 학원이나 방과후 교실에 보내지 못한 경험이 81.3%에 달했으나, 교육비 지원으로 방과 후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고 또래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의사표현 능력도 증가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난민아동지원사업에 대한 난민 부모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양육비는 아이 분유랑 기저귀 사는데 거의 다 썼어요. 그 외에 병원비로도 비용을 썼어요. 양육비 지원 받고 우리 아들이 더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의 양육비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또 아이 양육에 대한 저의 스트레스 감소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난민 신청 중인 부모 G)


“아들이 최근에 어린이집에 간 후 한글을 많이 배워오는데 집에서도 한글을 많이 써요. 또 행동도 잘 배워서 집에서 잘 적용해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항상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 셔틀을 타려고 먼저 내려가요.” (난민 신청중인 부모 F)


 세이브더칠드런 난민지원사업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는 신은주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그러나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민간의 힘으로는 난민 아동의 수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지원한다고 해도 당장 필요한 것들을 돕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는 사이 난민 아이들은 생계 걱정부터, 교육받을 권리에서 배제, 차별적인 시선까지 다양한 어려움에 노출된 채 커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난민촌에 살 때만 해도 꿈이 없었던 할리마는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 나라가 계속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내고 싶어서.” 그리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나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변의 좋은 이웃들과 지금처럼 오래 오래 함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할리마의 꿈에 우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공포와 위협에 쫓겨 멀고 낯선 땅에 온 할리마에게 우리는 한 명의 아이로서 당연히 보호받고 성장해야 할 권리를 지켜주는 이들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박영의(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사진 고우현(권리옹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