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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놀이터는 애물단지?
보도자료
201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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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격언을 새삼 다시 떠올린 것은 조만간 벌어질 어린이놀이터 무더기 폐쇄를 앞두고서다.

27일부터 전국 어린이놀이터 중 안전관리를 위한 설치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거나 검사를 받지 않은 곳 3396개(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민안전처)가 폐쇄된다. 이들 중 85%는 주택단지 안의 놀이터다. 주택단지 안의 놀이터 중 94%는 아예 검사를 받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대다수가 영세 주택단지라고 한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제정된 2008년 이전에 지어진 놀이터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용에 큰 불편이 없어도 개선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공사 비용이 만만치 않아 주민들이 검사를 받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놀이터의 안전관리 방식이 현재대로라면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어린이놀이터는 계속 폐쇄될 것이다. 안전의 중요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문제는 시설관리에만 초점을 맞춘 중복검사가 놀이터를 비싼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미끄럼틀 한 개가 있다고 치자. 제작 단계에서 미끄럼틀은 외부 기관의 공장검사, 제품검사로 안전인증을 받은 뒤에도 자체 검사와 외부 기관의 정기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잦은 검사 비용이 가격에 반영되니 미끄럼틀 값은 올라간다.

이제 이 미끄럼틀을 놀이터에 설치했다고 치자. 관리자는 설치검사, 정기 시설검사, 안전점검, 보험 가입 등 모두 12개의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벌금, 과태료를 내야 한다. 영세 주택단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비용과 의무다. 게다가 설치검사에는 놀이기구의 간격 등 제작 단계의 검사에서 이미 확인한 사항들과 중복되는 항목들이 많다.

이 복잡한 검사들이 놀이터의 안전을 철저히 보장해줄까? 놀이터 디자이너들에게 물으니 다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덜 까다로운 검사로도 명백한 위해요소는 막을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완벽하게 안전한 놀이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디자이너는 “미끄럼틀에서 아이가 튕겨져나가 다치는 걸 방지하려 터널형 미끄럼틀이 도입됐는데 아이들은 터널 위로 올라가고 두세 명이 터널 안에 함께 들어가거나 터널을 거꾸로 기어올라가며 논다”고 들려주었다. 시설 기준을 어떻게 세운들 아이들은 늘 그걸 뛰어넘어서 논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시설 중심의 과도한 중복규제가 재미없고 획일적인 놀이터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안전검사에 걸리지 않으려 놀이터 관리자는 단순한 놀이기구를 최소한만 유지하려 든다. 그나마 없는 시간을 내어 짬짬이 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외면하면 놀이터는 썰렁해진다. 가뜩이나 주민공동시설 총량제 도입으로 150가구 미만의 아파트에선 놀이터가 의무사항도 아닌 판국에, 썰렁해진 놀이터를 번거로워도 유지하겠다고 결심하는 주민들도 줄어든다. 이렇게 놀이터는 점점 사라지고 도시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비좁아져 갈 것이다. 

영국의 보건안전청은 놀이터 안전관리의 균형적 접근에 대한 누리집 게시글에서 “놀이 기회를 계획하고 제공할 때 목표는 위험의 제거가 아니다. 솜으로 둘러싸인 아이는 위험에 대해 배울 수 없다”고 썼다. 명백한 위해요소를 제거하는 안전관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안전관리가 어린이놀이터를 줄이는 결과를 낳거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적당한 모험을 통해 위험이 상존하는 세계를 탐험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자발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도 안 된다. 주민과 아이들에게 낡은 놀이터를 어떻게 개선할지 묻고 궁리하는 대신 철거 딱지 붙이고 손 놓는 건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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