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림이 집 대신 학교 교실에서 잠을 청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레바논 남부에 살던 카림은 지난해 9월에 발생한 폭격을 피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피난길에 올라 임시대피소인 어느 학교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살아있다는 다행과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서 아무것도 없는 학교 교실에 온기를 불어넣은 것은 세이브더칠드런이었습니다. 카림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폭탄과 비명이 없는 안전한 곳을 찾아서
저는 레바논에 사는 카림이에요. 13살이고요. 원래는 레바논 남쪽에 살았는데, 폭격을 피해 집을 떠났어요.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떨리는 것 같아요. 귀가 찢어질 것처럼 폭탄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었어요. 폭격기가 너무 낮게 날아서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았어요. 엄마, 아빠는 저와 동생의 손을 잡고 뛰었어요. 옷을 챙길 여유도 없이 휴대폰과 지갑만 들고 나온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는데 큰 소리로 울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우리가 계속 동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요. 집을 나설 때 입고 있던 옷 밖에 없어서 날이 추워지는데도 반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긴 옷을 한 벌 샀지만 이제는 파산이라고 아빠한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어요. 어디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러다 임시로 어떤 학교의 교실에 살게 됐어요.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는 학교였어요. 학교에 살면서도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어요. 처음에는 한 교실에 39명이 있었는데 너무 좁아서 사람들이 떠나 20명 남짓한 사람들만 남았어요. 지친 표정의 어른들, 수시로 울먹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7살짜리 동생은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어요. 나도 괜히 눈물이 났어요. 20명 넘는 사람들과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도 싫었어요. 엄마는 물이 너무 차가우니까 그걸 햇볕이 있는 곳에 놔뒀다가 동생을 씻길 때 썼어요.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가져온 불빛
어느 날 사람들이 창 밖을 보면서 웅성거렸어요. 학교 앞에 빨간색 트럭이 도착해 있었어요. 누구일지 몰라 긴장된 분위기였는데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와서는 자신들을 세이브더칠드런이라고 소개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곧 트럭에서 어른들이 상자를 잔뜩 가져왔어요. 그 안에는 물도 있고 음식도 있었어요. 천장에는 전등이 달렸어요. 밥을 해먹을 수 있게 냄비랑 조리시설이 생기고요. 깨끗하고 두꺼운 담요가 제일 좋았어요. 그동안 얇은 담요만 덮은 채 밤마다 가족끼리 꼭 껴안고 덜덜 떨면서 잠들었거든요.
그날 밤에는 전등에 불이 들어왔어요. 작은 빛이었지만 밤의 어두움이 가시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졌어요. 토끼 인형을 받은 동생이 토끼 흉내를 내자 엄마는 조금 웃기도 했어요. 다른 가족들이랑 같이 밥을 해먹으면서 전에 없던 활기가 교실에 가득했어요.
며칠이 지나자 친구들이랑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겼어요. 책이랑 학용품도 받았고요. 물이 다 떨어질 즈음 해서는 식수트럭이 왔어요.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프고 무서웠는데, 누군가가 찾아오는 게 반가웠어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친구들이랑 뛰어놀 때는 웃음이 나기도 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문득 세상이 온통 잿빛처럼 느껴져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학교에 계속 못 가면 어떡하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얼른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아동과 가족들의 사례를 모아 아동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동보호를 위해 아동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아동친화공간에서 놀이 활동하는 아이들
(아동보호를 위해 얼굴을 정면에서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9월 레바논에서 분쟁이 격화된 후 많은 분들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긴급구호기금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세이브더칠드런은 작년 10월 이후 임시대피소 343곳을 비롯한 레바논 전역에서 아동 7만명을 포함해 총 17만 5000명을 지원했습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식량과 식수를 제공하고 생필품, 긴급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임시대피소에서도 아이들이 배우고 놀 수 있도록 학습키트와 장난감을 제공하고, 임시학습공간과 아동친화공간을 설치했습니다. 폭격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심리사회적 지원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휴전이 2024년 11월 27일 합의되었지만, 협정을 위반하는 공격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 속 혹독한 추위로 방한용품을 비롯해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계속해서 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곁에 있겠습니다.
글 미디어팀 한국화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