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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마음 편하지 않은 설 풍경
보도자료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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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지났다. 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이다 보니 이곳저곳 방문하느라 모처럼 분주한 설을 보냈다.


과거에는 지나치면 남남이었을 사람들과 이제는 일가친척이라는 지붕 아래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인터넷으로 정확한 호칭부터 살펴야 하는 관계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 편에서만 그려지던 가계도가 데칼코마니처럼 배우자를 통해 한바탕 연결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새로 맺어진 친척들과 인사를 나눴다. 낯선 곳인 데다 긴장을 한 탓인지 한껏 차려주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역시 설 명절은 감정노동에 가깝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전에 보낸 명절은 대체로 조용하고 소박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인 데다 친척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인지 이런저런 이유들로 친척들이 자주 모이지 않았다. 명절 중 하루, 반나절 정도만 명절 분위기를 내고 나면 나머지는 휴일이나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에 누구는 세뱃돈을 얼마를 받았다거나 누구는 친척네 가서 뭘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책을 읽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 보는 게 편했다. 


명절에 뭐 했냐는 질문에 “그냥 푹 쉬었어”라고 하면 오히려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연휴 내내 큰집에 머물렀다는 사람은 드물고,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진 듯하다. 다들 조금이나마 숨통을 만들고 있다.


이런 변화가 현실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먼저 이번 설 연휴 첫날과 마지막 날 집 근처 카페에 자리가 없어서 세 군데를 옮겨 다녀야 했다. 동네 카페가 명절 대피소가 되었는지 공부하는 청년들로 가득 차 빈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둘째, 서울 시내에서 차가 막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에는 시내가 한산했는데 이제는 대형 쇼핑센터나 상가 밀집 지역은 교통 혼잡이 심하다. 마지막으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기간 출국자 수가 하루 평균 11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일요일까지 끼어 있는 짧은 연휴였는데도 작년보다 11%가량 늘어난 역대 최다 인원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언론에 ‘혼설족(혼자 설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설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오순도순 음식을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는 게 오히려 낯선 풍경이 되어 간다.


“취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애는 얼른 가져야지” 하는 잔소리가 원인이라고들 한다. 여성에게 과도하게 몰린 일거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뱃돈, 선물 비용, 차례 비용 등 과도하게 들어가는 명절 비용이 핵심이라고도 한다. 모두 맞다. 하지만 바뀐 명절 풍경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완행열차는 달렸다. 차가 막혀 산에서 오줌을 눠야 하고,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탈지언정 고향에 꾸역꾸역 내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동네에서 함께 놀며 자란 친척들, 고향 친구들 모두가 그립다. 그러니 갈 수밖에 없다. 부모님 세대에게 명절은 그리움이었다.


2017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를 넘어서고,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자라고 한다. 경기개발연구원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명절과 제사 관련한 스트레스 비용만 약 3조 원이란다. 삶의 터전과 방식이 바뀌었다. 맘 편하게 친척들을 만날 여유조차 없다. 명절은 기대감보다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데면데면한 친척들은 그리움보다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어색하기만 하다 보니 신상명세만 자꾸 묻게 된다.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게 명절은 아직까진 물음표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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