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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아기 사진 열풍’의 두 얼굴
보도자료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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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친구가 아기 사진으로 메신저 프로필을 바꿨다. 자식에게 푹 빠져 아기 사진으로 도배하는 평범한 부모는 되지 않겠다던 친구였다. 자식 자랑의 강렬한 욕망을 떨치기 어려웠나 보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사진이 올라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자식이라는데 얼마나 이뻐 보이겠는가. 자녀가 커 감에 따라 톡톡 터지는 대화, 몰입한 표정과 몸짓, 짧지만 빛나는 유년 시절을 기록해두고 싶은 욕망이 더해진다. 추억은 두툼한 가족 앨범 속 사진 몇 장에서 이제는 메신저 프로필과 가족 단톡방을 넘어 블로그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뿌려진다.


요즘은 더 전문화됐다. 아기 모델 선발은 게시물에 댓글로 아이의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예쁘고 귀엽다고 소문이 난 아이들은 수많은 랜선 이모, 삼촌 팬이 생기기도 한다. 육아 예능이 유행이다 보니 자기 자녀를 모델 삼아 직접 육아 예능을 찍어 올리는 부모도 많아졌다. 초음파 사진부터 태어나는 순간, 옹알이, 첫걸음마, 심지어 배변이나 목욕까지 모든 순간이 생중계된다.


사람들은 귀여운 아이들에게 열광한다. 이렇게 이쁜 아들딸 낳고 싶다고 하고, 심장 폭행이라고도 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SNS가 얼마나 삭막했을까.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읽은 한 가족 여행 책에서는 두세 페이지마다 지은이 자녀들의 천진난만한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작 어른들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아이들은 사진과 영상이 찍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 올라가 누가 보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찍어 올리고, 어른들끼리 돌려 보는 것이다. 사진 속 주인공인 아이는 그 과정에 끼지 못한다. 2015년 한 인터넷 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부모는 매년 200장 정도의 자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 부모가 올린 수천 장의 사진과 영상, 게시글과 마주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난해 뉴욕타임스에서는 부모와 청소년 자녀로 이루어진 249개 가정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 사진을 부모가 허락 없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사생활 침해로 인식했고, 굉장한 우려와 스트레스를 보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한 청소년이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을 함부로 올린 부모를 고소한 일도 있었다. 부모가 볼 때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이 입장에서는 절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 김희경은 부모가 가진 자녀에 대한 권리는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를 지켜주기 위해 부여되는 의무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녀의 어린 시절을 온라인이나 방송에 남겨놓는 것은 부모로서 맘껏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나와 같은 시민의 한 사람인 아이를 위해 조금은 참고 기다려야 할 일이다.


또한 아이 스스로 자신을 그려 나갈 수 있게 백지를 주어야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멋대로 기록한 자신의 모습을 잔뜩 발견한 아이는 마치 이미 종이 한가득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을 받는 느낌일 거다. ‘넌 그런 아이였어’라고 듣게 되는 것만큼 아이에게 슬픈 출발이 있을까?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힘겹게 싸워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깨져야 할 세계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아이를 알 속에 가둬서는 안 된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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