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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30대의 애환
보도자료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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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원래 이렇게 숱이 없었냐? 요즘 힘든 일 있어?”


얼마 전 몇 년 만에 뭉친 군대 시절 전우들은 날 보자마자 왜 이렇게 늙었냐며 농을 쳤다. 술자리라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계속 그러니 신경이 쓰였다. 전날 야근에다가 새벽까지 글 쓸 일이 있어 그렇다고 둘러댔지만, 기회를 틈타 냉큼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머리가 이날 유독 차분해서 내가 보기에도 가운데 머리숱이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부쩍 모발이 가늘어져 걱정이었는데 이날따라 더 그랬다.


사실 올해 목표는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 않기’였다. 하도 피곤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짜증이 나서 세운 목표였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피곤을 넘어 머리숱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올해 목표 달성은 물거품이 된 것만 같다. 자주 가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복싱도 하고 걸어서 출퇴근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쌓이는 것보다 누수가 더 많아지는 때가 왔나 보다. 


20대에는 분명 이러지 않았다. 뭘 먹어도 뱃살이 나오지 않았고, 조금만 운동을 하면 금방 근육이 붙었다. 급할 땐 3시간만 자도 하루가 너끈했다. 앞자리만 바뀐 것뿐인데 옛날 같지 않다. 왜 대학 때 나이 많은 선배들이 술자리에만 오면 너희가 부럽다며 미리미리 체력관리 하라는 연설을 늘어놓고 피곤하다며 먼저 일어났는지 이해가 간다. 소화가 안 되고, 자고 일어나도 찌뿌둥하다. 이래저래 요령만 늘어 중요한 과제가 마무리가 안 돼도 잠이 들고 만다. 자고 일어나서 해도 적당히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내 의지를 떠나 머릿속에서 끝난 것이다.


체력은 30대가 되니 더욱 소중해진다. 사회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 버텨내야 할 상황이 많아지는데 체력이 없으면 힘들다. 신예희 작가는 한 글에서 “운동은 좋은 취미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체력은 중요하다.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제스처, 우아한 인내심은 모두 체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완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몸이 처지면 마음도 처지고 상대방에게 신경 쓸 여력조차 없어진다. 피곤에 절어 있는 날카로운 상대와 한 번이라도 회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체력이 곧 인성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회적 관계망의 너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래도 저녁이나 주말에 모임 자리가 생기는데 일단 체력이 받쳐줘야 가보든지 말든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건강’에 매몰된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몸에 좋다는 온갖 걸 먹으러 다니고, 건강 프로그램만 찾아보고, 모이면 건강 이야기만 하는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건강하기 때문에 죽음도 피해 갈 것처럼 교만하게 구는 것 또한 싫다.

지난해 만성피로 치료에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보았다.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이 진맥해 보더니 “술 많이 먹나 봐?” 하고 물으셨다. “술은 안 먹는데요”라고 답하니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보시다가 “일 좋아하지?” 하신다. “좋아하는 일 오래 하고 싶으면 지금처럼 하면 안 돼”라고 말씀하시는 원장님의 나이는 족히 여든은 넘어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지 않은 게 못내 아쉽다.


통계청에서는 내 또래가 앞으로 50년은 더 살 거라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하고 싶고, 앞자리가 아무리 바뀌어도 멋들어지게 늙고 싶다. 나 같은 의지박약에게는 내 안의 열정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의 건강함을 누리는 건 욕심일까? 일단 오늘도 뛰기로 한다. 뛰다 보면 분명 좋은 생각이 날 것이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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