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정위탁부모 이야기② 12년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 |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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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6-28 조회수 7785 |
재희(가명)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라왔습니다. 재희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시설 운영상의 문제로 아이들은 갑자기 시설을 떠나야 했습니다. 재희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다른 시설이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졌습니다. 재희는 갈 곳이 없어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재희에게 이윤경 씨(가명)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시설이 문을 닫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3일 내로 (위탁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해서 급한 상황인 아이다. 우리 가정에 적합한지 천천히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 적응하기가 무지무지 힘든 아이일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묵묵히 제 말을 듣던 남편이 ‘그러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해라. 어떡하겠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면’ 그러더라고요.” 윤경 씨 가족이 재희를 (전문)위탁하기로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10년 넘게 두 아이를 위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3년 전, 윤경 씨는 봉사활동을 다니던 곳에서 6살, 3살 자매를 만났습니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아이를 돌봐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밤에 무서워하고 그러는데, 얘들은 얼마나 밤마다 두렵겠어요. 놀라서 깨면 누가 옆에 있어 주겠어요. 조금만 더 잘 키우다 보면 부모들이 다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일텐데. 그 기간만큼이라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베테랑 위탁엄마인 윤경 씨도 한동안 마음을 열지 않는 재희가 쉽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가정에서 생활해보지 못한 재희는 집이 낯설었고, 엄마라고 부르는 윤경 씨가 낯설었고, 가족들의 관심이 낯설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와도, 아빠가 회사에 출근해도 인사를 전혀 안 해요. 아침에 이름을 부르면서 ‘잘 잤니?’ 인사를 해도 고개를 못 드는 거예요. ‘엄마는 너한테 인사했는데 너도 나한테 인사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다가섰어요. 아이와 교감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상황이 반복되니까 벽을 두드리는 것 같고 문 없는 곳에 문 열려는 것 같고…. ‘나는 이 집에 와서 먹고 자기만 하면 돼. 그리고 아줌마는 키워 준다고 했으니까 키워만 주면 돼. 더 이상은 나한테 들어오지 마’ 재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재희는 평범한 일에도 움츠러들었습니다. 냉장고에 우유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윤경 씨가 ‘우유가 하나도 없네. 우유를 누가 다 먹었지?’하고 혼잣말을 하자 재희는 금세 거짓말을 했습니다. ‘난 안 먹었어요. 나 아니에요.’ 하지만 그날 우유를 먹은 사람은 가족 중 아무도 없었습니다. 재희가 우유를 다 먹었다고 말하면 윤경 씨는 분명 ‘잘했다. 니 많이 묵고 얼른 커라’ 이렇게 말했을텐데, 재희는 자기가 우유를 먹어서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윤경 씨는 재희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거짓말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재희한테 ‘오빠도 안 먹었고 엄마도 안 먹었는데. 우유 먹은 걸로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엄마 혼자 하는 말이었는데 니가 두려워서 엄마한테 혼날까 싶어서 그랬을 것 같아. 그런데 니가 말 안하면 난 굳이 안 물을래.’라고 했죠.” 재희는 그 날 이후 며칠간 우유는 물론이거니와 밥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윤경 씨는 조심스럽게 추측했습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 크게 혼났던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순간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그냥 넘어가고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밥을 안 먹어요. 처음에는 밥 먹으라고 계속 불렀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방문을 살짝 닫고 들어갔더니 애가 나오더라고요. 아무도 없으면 나와서 막 먹어요. 아마 잘못을 하면 밥을 안 먹었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 재희를 이해하는 데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전문가정위탁시범사업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아이가) 어떤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예전에 어떻게 컸다는 일지 하나를 본 것도 아니고. 아이가 상담 받는 곳에 가서 아이 상태라도 내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나중에는 위탁가정 부모에게도 상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는데, 상담 받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윤경 씨가 재희를 생각하는 만큼 가족 모두가 재희에게 마음을 쏟았습니다. 윤경 씨 남편은 재희가 처음 집에 오는 날 아빠가 있어야 된다며 출장 중 급하게 집에 와서 재희와 함께 식사를 했고, 큰 아들과 둘째 딸은 종종 집에 올 때마다 재희를 막내 동생으로 받아줬습니다. 재희는 윤경 씨와 가족들의 따뜻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어느 날 윤경 씨는 재희가 방을 청소해주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재희도 우리 가족 구성원이니까 자기가 쓰는 방은 자기가 치우게 하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내가 오늘은 엄마 방 청소 좀 해 줄게요.’ 이러는 거예요. 이건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는 거예요. 전에는 절대 없었거든요. 우리 집 소속이 아닌 것처럼 그랬는데….” 변화는 지난 5월 어린이날즈음에도 있었습니다. “재희가 ’어린이날에 저한테 뭐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묻는 거예요. 뭐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까 ‘어린이날에는 이런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자기가 원하는 걸 무조건 요구하고 당연하게 받아야 된다는 것처럼 말했거든요. 밥만 해주면 되고, 자기가 요구하는 것만 해주면 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왜요, 나한테 이런 거 왜 해줘요’ 이랬다면 이제는 ‘그거 해주세요. 나한테도 해주세요’ 이렇게 칭얼칭얼도 하고 ‘와, 세상에 엄마가 최고야’ 이런 표현을 하는 거예요. 종종 그럴 때면 나를 엄마로 받아들였다는 게 느껴져요.” 하지만 여전히 윤경 씨는 재희가 마음 문을 다 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희의 12년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재희 곁에 항상 있을 윤경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재희까지 벌써 세 명의 아이를 위탁하고 있지만 윤경 씨는 할 수 있는 한 위탁엄마로 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문제 아이들이 많다고 해요. 문제 아이의 아픔을 내가 같이 아파주면 그 애는 덜 아플 거고, 자신의 아픔을 감싸주는 걸 겪은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아이가 될 거잖아요. 나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것 같아요." 윤경 씨 말처럼,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아픔을 감싸줄 때, 그 아이들이 다시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학대피해아동을 가정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전문가정위탁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합니다. ▶전문가정위탁에 대해 알아보기: 학대받은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글 한국화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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