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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중, 네팔 대지진의 현장에 있던 서른 살 청년, 사진첩을 팔아 전액 기부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6-04-08 조회수 1587

[후원자 이야기 01]


세계여행 중, 네팔 대지진의 현장에 있던 서른 살 청년, 

사진첩을 팔아 전액 기부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요. 그런 이유로 세이브더칠드런을 선택했습니다.” 



네팔 대지진 1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 년을 계획했던 세계여행 중, 당시 네팔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에 있던 한국 청년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끝내 네팔 사람들을 마음에서 떨쳐낼 수 없어 고민하던 중, 세계여행 중에 찍은 사진으로 ‘행복사진첩’을 만들어 인터넷 페이지에서 팔아 3백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습니다. 

작년 10월 서울의 세이브더칠드런 본부 사무실에 직접 찾아온 이일웅(30세, 대구 거주) 후원자는 네팔 긴급구호 후원금으로 써달라며 이 돈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갔습니다. 이후 사진첩이 몇 권 더 팔리자 추가로 들어온 6만 원도 다시 세이브더칠드런으로 보내왔습니다.


어느덧 네팔 대지진 1주기가 되는 4월, 이일웅 후원자를 만나보았습니다.

“내가 식사 한 끼 안 하고 보탠 1만 원, 2만 원이 지구 반대편 어느 누군가의 귀한 생명을 구하는 데 쓰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따뜻해져요.”라고 말한 이 청년은 웹페이지 ‘Pray for Nepal’(http://intropage.net/prayfornepal)을 만들어 네팔돕기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격려해주어서 참으로 고마웠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네팔 대지진으로 인한 총 사망자가 8,891명, 부상자는 2만 명을 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된 아동이 100만 명에 이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하는 네팔 복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지진이 났을 때 네팔 현장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4월 25일 네팔에 강도 7.8의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저는 네팔에서 배낭여행 중이었어요.

5월 5일 네팔을 벗어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여진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밖으로 뛰쳐나가야만 했어요. 오래된 건물들, 특히 역사 깊은 사원들은 대부분 무너졌어요. 5월 12일에도 진도 7.4의 지진이 또 한 번 덮쳤고, 홍수와 전염병도 걱정스러웠어요. 사실 전 지금도 쿵쿵 소리가 들리면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두려워져요. 지하철 진동소리에도 막 지진이 생각나고요. 지진 이후에도 7~8일간 네팔에서 더 머물렀는데, 사실 그땐 미안해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어요. 비행기 표 구하기도 참 어려웠고, 공항도, 거리도 아수라장이었지요. 


네팔돕기를 위한 사진첩 판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2015년 6월 18일부터 여행을 마치는 8월 20일까지 순 기부금 300만 원을 목표로 하고 모금을 시작했어요. 모금액은 제가 여행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서 직접 기부할 예정이었구요. 온라인으로 사진첩을 제작, 판매하는 데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이 1만 원입니다. 1만 원 ‘이상’의 금액을 보내주시면 그 수익금은 기부금으로 쓰여질 거라고 웹페이지에 올렸지요. 즉 ‘1만원+기부하고 싶은 금액’을 보내주세요, 하는 방식으로 인터넷으로 모금한 거죠. 







많이들 호응해주었나요?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사실은 제가 그때 네팔을 떠나 영국에 도착해 지내고 있던 때였는데, 거기서 만난 여행 친구들이 ‘너도 네팔 지진 때 현장에 있었니?’ 하고 놀라고 걱정해주더군요. 살아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죠. 그러면서 갑자기 네팔 사람들이 걱정됐어요. 매일 매일 여진에 불안해할 텐데, 또 거기서 지금도 살고 있거나 가족이 네팔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고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사진첩을 팔아서 돕자, 마음먹었고, 독일에서 여행할 땐 벼룩시장에서 여행사진첩도 팔고 그랬어요. 어쨌든 작은 도움의 손길이 그들의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 그 사진들은 네팔 사진은 아니고, 제가 세계여행 하면서 찍은 다른 사진들이었어요. 한국 분들이 7~80명 정도 기부해주셨고, 지인이 그중 10명 정도예요. 특히 3만 원, 5만 원 보내주시면서 ‘사진첩 안 받아도 된다, 그냥 사진은 네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걸로 충분하다. 보내준 돈 다 기부해달라.’고 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요. 







후원금을 세이브더칠드런에 전부 기부하셨는데, 어떻게 우리 기관을 선택하게 됐나요?


무엇보다 전 초점을 ‘아이들’에 두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가장 고통을 겪으니까요. 그래서 몇 군데 NGO단체에 메일을 보냈다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먼저 친절한 답장이 와서 신뢰가 갔고, 직접 방문해서 기부하기로 마음 먹게 됐습니다. 방문해서 ‘정확히 이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 것이냐’ 질문했을 때, 체계적인 구호기금 사용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여행과 기부가 닮은 점이 있다면요? 


(웃음) 두 가지 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사진첩을 판매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어요. 저도 3백만 원을 모을 줄은 몰랐어요! 그중엔 고시생도 있었고, 중학생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기부는 못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제게 힘을 주고 싶다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기도 하셨어요. 예전에 한동안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도 몇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꾸준히 봉사하던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여행을 하면서, 저 역시 이름도 모르는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선 친구와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던 현지인이 숙소까지 먼 거리를 데려다주기도 했고, 남미에서는 아파서 숙소에 하루 종일 누워 있는데, 그날 처음 만난 독일 친구가 먹을 것과 약을 사다주며 돌봐주기도 했어요. 세상의 비공정함을 알리기 위해 도시 한복판에서 혼자 시위하던 사람도 있었고,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겠다며 3년간 자전거를 타면서 모금활동을 하던 사람도 있었어요. 제가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 보지 못했을 거예요. 

한 가지 더! 여행과 기부는 대단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자라 온 동네를 떠나 주변 지역을 ‘탐험’하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가면 그게 ‘여행’이고, 단돈 1천 원이지만, 그걸로 남을 돕고 싶다면 그게 ‘기부’인 것 같아요. 


최근 들어 더 힘들고 벅찬 세상이 되어간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특히 이십대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이제 서른이 되고 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저도 자주 세상이 녹록지 않다고 느껴요. 돈벌기도 힘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힘들어요. 그럼 전 눈을 감아요. 모든 초점과 기준을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놓는 거죠.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는 방법을 찾고,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그러면서 산행이 좋아졌어요. 또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어요. 성공에 대한 환상도 버렸습니다. 성공을 포기한 게 아니라, 성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버린 거예요. 살다 보면 성공보단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거고, 그럴 때마다 “도대체 내가 뭐가 부족해서?” 식의 태도는 스트레스만 가져다줄 것 같아요. 실패하게 됐을 때 필요한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항상 활기차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식으로 나눔도 지속하실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저도 여행 중에 돈이 없어 노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잠자리 한 번,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고, 누군가가 도와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도 알게 됐지요. 제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믿어요. 얼마 전에 친구랑 어학원을 차렸는데 악전고투 중이예요.(웃음) 그런데 이번 4월에 아주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얻었어요. 노르웨이, 스웨덴 북극권의 툰드라지역에서 5일간 개썰매를 타는 멋진 일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그 후엔 다시 제 일에 몰두해야죠. 지금은 우리 어학원에 학생이 한 명씩 늘 때마다 해외결연후원을 하나씩 맺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청소년기에 편지교환이나 후원을 하는 이런 경험은 참 기분 좋고 오래가는 경험이니까요.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웃던 이일웅 후원자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웃음이, 목소리가 참으로 싱그러웠습니다.


 이선희(후원관리부)        사진 이일웅 제공



세이브더칠드런을 존재하게 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힘은 누구보다 후원자님들입니다. 매달 꼬박꼬박 보내주는 후원금에서, 가끔 전해지는 사연과 편지에서, ‘내가 늙어서 돈이 얼마 없어. 그래도 애들은 도와야지’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후원자님들의 조용한 음성에서, 스무살 청춘 후원자님의 웃음에서, 아이 이름으로 후원신청하는 엄마 아빠 후원자님들의 마음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더욱 활력을 얻습니다. 

후원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좋아지게 바꾸는 힘입니다. 

앞으로도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겐 인생의 힘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후원자님의 목소리를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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