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브더칠드런과 인연이 깊은 황성철 후원자님은 과거 한국전쟁 직후 故 루이스 히스(Louise Heath) 부인이라는 한 미국후원자로부터 후원을 받았던 세이브더칠드런의 후원아동이었습니다. 후원자님은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히스 부인에게 받은 사랑을 5명의 저개발국 어린이에게 돌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 네팔에 있는 2명의 결연아동, 아사마(Asama, 여, 9)와 까말레시아(Kamalesha, 남, 8)를 만나고 오셨습니다.
후원을 통해 나를 키워주신 히스 어머니를 기리며,
보답 한 번 하지 못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떠나는 여행
네팔후원아동 방문기
황성철 후원자(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히스 어머니
내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시다. 한 분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친어머님, 또 한 분은 내가 외롭고 힘들던 유소년시기에 친어머님 못지않게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내 삶에 또 하나의 희망이 되어 주셨던 히스(Mrs. Louise Heath) 부인이시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 미국 아리조나에 계신 히스 부인과 또 한 분의 어머니로 인연을 맺은 것은 주일학교 이삼현 선생님의 도움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때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사무소(당시 명칭: 미국아동구호연맹)에 계셨다.

사진/ 히스 부인이 당시에 보냈던 서신과 사진
어머니께서 처음 보내주신 편지와 사진 그리고 몇 가지 장난감들은 나를 무척이나 즐겁게 해 주었다. 언젠가 형형색색의 예쁜 공을 하나 보내 주셨는데 그 공은 거의 대학교 들어가서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항상 인자하게 웃음을 가득 머금고 사랑스럽게 쳐다보시던 어머니의 푸른 눈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했다. 'I love you, my son!' 이렇게 시작된 히스 어머니의 정신적 물질적인 후원은 오늘의 나를 나 되게 한 하나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기에 이제는 그 은혜가 갚으려 해도 갚을 길 없는 영원한 채무로 남아 늘 죄송한 마음뿐이다. 어머니에게 진 사랑의 빚을 못 갚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갚기로 하고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결연후원자가 되기로 하고 매월 적은 금액을 후원하게 되었다. 그러던 터에, SBS-희망TV의 촬영진,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들(김재영, 김현수)과 함께 네팔에 다녀왔다. 아내도 동행했다.
'아사마', '까말레시아'
내가 후원하고 있는 네팔의 결연아동들이다. 이 어린이들을 만나러 가는 네팔 행이 정해진 뒤, 나는 아내와 함께 며칠간 네팔의 언어, 문화, 기후, 역사 등에 대해 공부를 했다. '나마스테!'(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도 배웠다. 네팔에 도착하니 매연과 무질서 그리고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적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적 낯섦도 '아사마'와 '까말레시아'를 만난다는 기대감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설날 아침을 기다릴 때처럼 그 아이들을 볼 생각으로 마음이 설렜다.
네팔풍의 조용한 히말라야 호텔에서 첫날의 여정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에 아이들이 사는 시하라(Siraha)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약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를 더 달려가 네팔의 전형적인 시골호텔에 짐을 풀었다. 낮에는 전기공급이 중단되고, 더운 물은 부엌에서 끓여 날라야 샤워를 할 수 있는 그런 호텔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내 자녀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불편한 줄도 몰랐다.
'아사마'와 '까말레시아'를 만나는 날, 자동차 두 대에 일행이 나누어 타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려갔다. 도착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잔뜩 긴장이 되어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사마'와 '까말레시아'가 수줍은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어색하게 맞아주었다. 마을 원로들까지 나와서 그야말로 온 마을이 마치 대단한 사람을 맞이하는 듯 얼굴 미간에 '티카'(행운을 상징한다는 빨간 분말가루)를 찍어주고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등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외국에서 이처럼 극진한 환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베푼 것은 정말 작디작은 것이었는데 그에 비해 너무나 큰 환영을 받고 보니 내심 너무 부끄럽고 곤혹스러웠다.
간단한 환영행사를 마친 후 먼저 '아사마'의 집을 방문했다. 아버지가 안계신 '아사마'의 가정은 어머니와 함께 8식구가 방 두 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야크버터와 과일들을 볼 때 마음이 뭉클했다. 야크버터는 최고의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족들과 간단한 대화를 마친 후 '아사마'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잘 보관해 둔 편지들과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내가 예전에 '아사마'에게 보내준 것들이었다.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짐을 숨길 수 없었다. 준비해 간 선물인 옷을 입혀주고 신발을 신겨주자 '아사마'가 살포시 애교 있게 웃었다.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9살배기 소녀 '아사마', 이 아이가 바로 우리 셋째 딸이다!

사진/ 아사마의 집을 방문한 황성철 후원자님 내외
'아사마'의 손을 잡고 유쾌한 걸음으로 '까말레시아'의 집을 찾았다. '까말레시아'의 형편은 '아사마'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아마도 가장인 아버지가 있어서인 듯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까말레시아'도 내가 보내준 편지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고, 자기가 그린 그림까지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사뭇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였다. 묻는 말에 '아하, 아하' 라고 귀엽고 천진스럽게 대답하는 그를 보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역시 준비해 간 옷을 입혀주고 신발을 신겨주자 연신 싱글벙글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그보다 더 큰 행복을 느꼈다.
'아사마'와 '까말레시아'가 다니는 잔타도미학교(Janta Domi School)도 방문했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입구에 다다랐을 때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려 600여명의 학생들이 하나같이 모두 꽃목걸이를 손에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두 줄로 도열하여 우리 부부에게 일일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이 아닌가! 내 생애에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사진/ 황성철 후원자님 내외를 반기는 환영식
학생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서 '아사마'와 '까말레시아'가 공부하는 교실로 이동하여 그들의 배움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네팔의 미래 주역들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맑고 순수하다는 것, 환경이 어떠하든지 어린이가 그 나라의 미래요,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네팔의 희망을 보다
육체적으로 몹시 피곤한 날이었지만 정신적인 즐거움이 육체의 피곤을 감싸기에 충분한 기쁜 날이었다. 사랑하는 '아사마'와 '까말레시아'의 아쉬워하는 눈빛을 뒤로 하고 떠나오는 나의 마음 역시 아쉬웠다. 나는 네팔의 희망을 보았다. 어린이들을 깨우려고 노력하는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은 NGO의 존재감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TV를 통하여 전하려고 애쓰는 SBS방송국이 네팔의 작은 희망이 되어 주고 있었다. 희망은 얼마나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인가?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는 씨를 분배하고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것이 희망의 힘이다.

사진/ 황성철 후원자님 내외와 손을 잡고 가는 아사마와 까말레시아
사랑의 기쁨!
나는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네팔에 머물렀다.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신비에 싸여 붉게 타오르는 히말라야 산맥을 내려다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받을 때보다 베풀 때 느끼는 기쁨은 더 크다.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보다 주려는 사람이 더 많을 때 그 사회와 국가는 평안하고 행복한 것이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기 위해서는 어떤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머리나 마음이 아닌 손과 발에 있다. 사랑의 구체적 실천은 나눔이고, 나눔은 삶의 공유이다. 즉, 나눔의 대상을 나의 삶에 초대하여 나와 더불어 먹고 나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정태적인 명사형이 아닌 동태적인 동사형의 사랑에는 희망과 생명력이 있어 모두를 살리고 행복하게 해 주는 동력이 된다.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아사마', '까말레시아' 네팔에서 단 몇 시간을 함께 했던 후원아동들이지만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사랑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한 답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깨달을 수 있어 너무도 감사했다. 한비야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 서로 얽히고설켜 살고 있다. 강자도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르고, 어떤 면에서의 강자라도 어떤 면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 강자가 약자의 약점을 서로 담당해야 세상이 유지된다. 나의 남은 생애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러한 가치관을 더욱 치열하게 실천하면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사랑하는 히스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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