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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지원 전문가가 직접 가본 우크라이나 난민 이야기
긴급구호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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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5월 22일부터 약 6주간 인도적지원 전문가 장설아 매니저를 아동보호 어드바이저로 파견했습니다. 긴급하게 돌아가는 구호 현장에서 기록한 장설아 매니저의 경험을 통해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폴란드 행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 긴급구호 현장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출발 전 우연히 구입한 『전쟁일기: 우크라이나의 눈물』이라는 책을 펼쳤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집을 두고서. 내 아이들을 위해.”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 우크라이나의 눈물』 中 -


지금까지 소말리아 내전, 시리아 전쟁, 미얀마 군부 박해 등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난 피란민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왔습니다. 그러나 분쟁을 경험하는 개개인의 고통은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양하고 고유합니다. 책을 덮으며 이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한편,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후로 현장은 긴급구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벌써 4월 초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활동하는 긴급구호팀의 아동보호 총괄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민간 단체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불허하면서 파견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5월 중순 경, 폴란드 내 아동보호 어드바이저로 파견 권유를 받고 단 열흘 만에 출국한 것입니다. 그만큼 현장은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 [장설아 매니저 인터뷰] 활동가 파견 원하는데… NGO 구호활동 발목잡는 ‘여권법’




▲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 CEO 잉거 애싱과 회의를 진행하는 장설아 매니저


폴란드 도착 후 일주일간은 현지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쟁 초기의 대규모 난민 유입이 완만한 추세로 변한 시점으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제게 주어진 임무는 분쟁 상황에서의 아동보호 전문가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현지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18개월간의 아동보호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세이브더칠드런을 대표해 유엔에서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원활한 구호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폴란드 정부를 대상으로 옹호 계획을 세웠으며, 현지 파트너 NGO에 자문을 제공하는 등 그야말로 일당백의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도 저를 동기부여 해준 가장 확실한 동력은 역시 아동을 직접 대면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현지 사무소에 적응을 완료한 뒤 바르샤바에서 약 290km 떨어진 크라쿠프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3월부터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난민 가족들의 임시 거주 센터와 아동친화공간을 운영해왔습니다. 폴란드는 사회 기반 시설과 복지 시스템이 발전된 국가이기 때문에 대부분 기존에 있던 공공시설에서 난민을 지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난민들이 타 지역이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일부는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이용자가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운영 중단을 위한 출구 전략을 세우기 위해 떠난 출장이었죠.




▲ 세이브더칠드런이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운영하는 아동친화공간



세이브더칠드런의 로고가 크게 박힌 복도를 지나자 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동친화공간 중간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의자와 하얀색 테이블이 이어져 있었고 우크라이나 출신 심리 상담사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이 자유롭게 미술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아동친화공간이 세이브더칠드런의 기준에 맞게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심리 상담사가 아동의 연령과 성별에 맞춘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관찰했고요.


최대한 미술 치료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와 달리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우리는 한국, 독일, 영국에서 온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이라고 소개하니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국을 잘 알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통역을 통해 각자 그린 그림을 소개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반응을 살폈습니다. 경계심이 아닌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을 보며 안전한 공간의 필요성과 심리 치료의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아동친화공간에서 운영하는 미술 치료에 참여한 아동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난민의 90%는 여성과 아동입니다. 폴란드 정부가 외국인 등록 번호를 제공하고 18개월간 폴란드에서 거주와 이동 자격을 제공하면서 의료시설, 교육 등 각종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포함한 NGO의 현금 및 바우처 서비스가 곳곳에서 지원되고는 있지만 보다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 자녀를 아동친화공간에 맡겨두고 외출한 엄마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동친화공간은 재난 상황에서 현실적인 삶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부모를 돕는 기능을 합니다.


미술 치료를 마친 우크라이나인 심리 상담사 사라(가명)씨와 아동친화공간 운영 종료 후 계획을 의논했습니다. 사라도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남겨두고 갓난 아기와 함께 국경을 넘었습니다. 본인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부터 이곳에서 아이들과 1:1 개인 상담과 집단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더 나아가 청소년과 성인 대상 상담까지 도맡아 해오고 있었습니다. 폴란드 현지에 아동 전문 심리치료사가 부족한데다 언어의 장벽을 감안하면 사라와 같은 우크라이나인 심리 상담 전문가 한 명 한 명이 소중합니다.


전쟁과 가족 분리를 경험한 아이들은 우울증과 슬픔, 공포와 같은 정서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세이브더칠드런은 심리적 응급 처치(Psychological First Aid, PFA)와 같은 긴급한 아동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집중적인 심리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관찰하고 필요할 경우 전문적인 정신건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합니다. 더 나아가 아동이 겪는 정서적인 어려움이 교육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교육 사업 내에서 심리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통합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 엘레나가 선물한 그림을 걸어둔 바르샤바 사무소 책상



미술 치료에 참여했던 엘레나(가명, 5세)가 다가와 옷자락을 잡더니 가져온 장난감 세트를 보여줬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같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자고 신호를 보내더군요. 함께 엎드려 전체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뿌듯해 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센터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갈 채비를 하자 엘레나가 또 다시 제게 손짓을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동안 그렸다는 그림 한 장을 보여줍니다. 


장설아 매니저: “(손가락으로 동그란 해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엘레나: “ SUN!! SUN!!”


뜨거운 햇살이 감도는 검은 테두리의 들판, 그리고 빈 공간을 가득 메운 알록달록한 하늘까지.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했더니 가져가라며 손에 쥐어 줍니다. 현장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이 분명해졌습니다. 밀려 들어오는 업무에 치여 힘이 들 때마다 선물 받은 그림을 사무실 책상에 붙여두고 힘을 내곤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이 직접 만든 색동 나무와 미술 작품


한국에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의 난민 등록 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다소 사무적이고 침울한 센터에서 유일하게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아동친화공간입니다. 약 스무 명 가량이 온라인 학습, 상담, 놀이, 독서 등 시간을 보내는 아동친화공간은 아이들의 에너지로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 제게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옷 소매를 잡아 끌며 따라오라 손짓합니다. 밖으로 나갔더니 눈이 부실 정도로 다채로운 한 그루의 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본인이 만들었다는 제스처와 함께 자랑스럽게 작품을 보여주더군요. 그림을 감상하며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아이들도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아름드리 색동나무만큼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라나라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후원자들이 내민 손길이 결실을 맺는데 작게나마 기여했던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이 재난 현장에 아동친화공간을 운영하는 이유



 장설아(국제사업부문) 편집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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