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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내가 ‘개저씨’라고?
보도자료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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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애매한 관계인 지인과의 팔로를 페이스북에서 취소했다. 친구 관계까지 취소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할까 봐 내버려 두었다. 평소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편향적인 그의 글과 공유하는 자료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 타임라인에 뜬 그의 글은 역시나 불편한 지점이 많았다. 굳이 나만 보는 공간에 맘에도 들지 않는 글이 올라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나둘 정리하다 보니 내 타임라인에는 한층 더 내 입맛과 취미, 취향에 맞는 글이 올라온다.


온라인에서 나와 닿아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살아온 과정이나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들과 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직업이나 취미, 종교,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내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지방에서 살고 있는 중학생이나 내 또래의 공장 노동자, 농사짓는 할머니를 온라인에서 만날 일은 드물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는 내 타임라인에 뜨지 않는다.


중학교 아이들과 요즘 인기 있는 콘텐츠 이야기를 하다가 유튜브 첫 화면을 서로 보여준 일이 있었다. 유튜브 첫 화면은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알고리즘이 자동 추천해주는 영상으로 채워지는데 나와 아이들의 첫 화면은 정말 달랐다. 나는 웃긴 해외 영상과 미스터리, 복싱 관련 영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면에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아이는 온통 게임 영상이었고, 힙합을 좋아하는 아이는 각종 공연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과거에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신문, TV 같은 몇 군데 정해진 통로에서 정보를 얻었고, 이들에게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게 중요한 문제예요’라는 걸 정하는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내 입맛에 맞을 만한 취향 저격 콘텐츠가 제공되고, 비슷한 부류의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콘텐츠 속에 둘러싸여 있다. 과거에 비해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것이나 지인들이 추천한 것,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걸러내야만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강화된 세상을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힐러리를 지지하고 당연히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던 사람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을 때 너무나 당연했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혼돈을 겪었다고 한다. 캐릭터 커뮤니티 속 세상이 진짜인 것처럼 행동했던 두 잔혹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아웃포커스 사진 같다. 나를 중심으로 선명해진 ‘우리’의 세상과 내가 잘 모르는 흐려진 세상 사이에서 우리는 점차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진다. 신속하게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급식충, 맘충, 개저씨, 틀딱충, 김치녀, 한남충은 이런 구분 짓기의 결과가 아닐까? ‘그들’ 나름의 개별성과 개인이 처한 상황은 우리의 타임라인에 뜨지 않기 때문에 비하와 조롱, 분노와 증오가 증폭된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정리하고, 비슷한 부류의 지인들과 맞춤화된 정보들이나 공유하고 산다면 나도 곧 개저씨라 비판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개저씨들과 모여 급식충과 맘충, 틀딱충들을 욕하고 있을 거 같다. 내게 맞춰진 세상이 좁은 세상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남아 “그것들은 꼭 그러더라”, “우리 때는 말이야” 하고 있을까 진심으로 두렵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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