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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우리 세대의 광장
보도자료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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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 시민사회 공개강좌를 통해 서울대 안에 조성된 ‘민주화의 길’을 걸을 기회가 있었다. 4·19 기념탑에서 시작한 걸음은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진 열사들의 추모비와 동상들을 지나면서 마무리 되었다. 담당 교수님은 자못 어두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자신의 선배, 동기, 후배들의 이야기로 곰살맞게 풀어주셨다. 본인 세대가 이룩한 민주화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난 심사가 배배 꼬였는지 선배들의 노고를 딛고 우리가 서 있다는 걸 알지만 마음 한편에 반발심이 났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이건가. 우리 세대는 여전히 힘든데….’


나는 6월 항쟁의 불길이 서서히 번지던 1986년에 태어났고, 88만 원 세대이며 지금은 소위 ‘헬조선’으로 일컬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희생 어린 민주화의 과정은 대학입시 교과서에서 4·19, 5·18, 6·29 같은 숫자를 보고 암기하면서 처음 만났다. 아무래도 존경과 감사한 마음이 앞서기보다는 여전히 남은 우리 사회의 적폐들에 더 눈이 갔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과 몇 안 되는 좋은 일자리, 적은 임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아른거린다.


얼마 전 서울대 85학번 입학 동문의 시국선언을 읽었다. 꼭 필요한 시기에 목소리가 나온 점에서 반가움과 고마움도 잠시 이내 마음에 질투가 났다. ‘우리는 1987년 민주화의 성과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참담한 마음으로 목격하고 있다. 30년 전 젊은 날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6월 항쟁 세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들의 다짐에서 든든한 동지들과 역사적인 사건을 함께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시국을 개탄하는 심경과 함께 슬며시 느껴졌다. 이런 공동체적 성취 경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못내 부러웠다.


우리 세대의 많은 청년들은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옆자리 친구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고, 대학에 가서도 도서관 카드 등록과 토익학원을 둘러보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잦은 야근과 자기계발 압박, 얇아진 지갑 때문에 실익 없는 친목모임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혼밥’ ‘혼술’이 편한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결국 파편화된 개인만 남고 거대한 사회 구조 앞에서 좌절한 세대, 그게 우리 세대의 끝인 줄 알았다.


며칠 전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같이 광화문 나갈래요?” 평소 게임 ‘덕후’로 정치에 크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던 후배였기에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다. 나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다음 날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한 말은 “형, 이거 완전 축제예요. 축제”였다. 그는 결국 혼자 참가했지만 ‘혼자 온 사람들’ 깃발을 보고 대충 따라 가다 보니 그냥 사람들에게 밀려 돌아다녔다고 했다. 가수들의 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 각종 패러디도 보고 그냥 소리도 지르다 보니 뉴스 보다가 쌓인 스트레스가 꽤나 풀렸다고 했다. 


후배가 참가한 광장은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경험한 숭고하고 근엄한 투사들의 광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더 열린 광장이다. 참가한 사람들의 연령대도 폭넓었고, 직업군도 다양하다고 한다. 특히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온 사람들에서부터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 같은 회색인,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수줍은 개인, 골방형 덕후까지도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장의 다양성과 포용성에는 그간 우리 세대가 패러디와 각종 드립으로 훈련한 탈권위주의, 파편화된 개인들 간에 느슨한 연대를 꾸준히 시도해온 노력이 담겨 있지 않을까. 난 더 이상 선배 민주화 세대를 부러워만 하진 않기로 했다. 우리 세대가 새로운 광장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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