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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수족관 밖은 위험해
보도자료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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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족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어린 조카들은 일본 최대 규모의 수족관에 들른다는 이야기에 “삼촌, 우리 고래상어 보러 간대요”라며 자랑이다. 삼촌도 같이 가는 거라고 말했지만 이미 자기들끼리 상어지식 자랑에 빠져 들은 척도 안 한다. 수족관에 도착하니 8m가 넘는다는 고래상어는 정말 거대했다. 조카들은 이미 고개를 한껏 젖히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서글퍼졌다. 고래상어와 거대한 가오리, 물고기들이 수족관 안을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뱅뱅 돌고 있다니. 태평양을 맘껏 헤엄치고 다녀야 할 아이들이 조그만 수족관 속을 하염없이 돌고 또 돌았다. 


지금 생각해도 꽤 먼 길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의 도움 없이 친구들과 함께 30분쯤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차가 다니는 건널목을 건너고, 상점가를 지나기도 했지만 특별히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 다니는 우리 동네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우리 동네 반경도 꽤 컸고 해가 갈수록 넓어졌다. 다만 몇 가지 규칙은 확고했다. ‘모르는 아저씨가 주는 사탕은 받지 않기’, ‘공장 근처는 가지 않기’, ‘해가 질 무렵이면 집에 돌아오기’. 태평양처럼 넓어진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은 항상 두근거리는 놀이였고, 모험이었다. 


요즘 내가 만난 아이들은 틈만 나면 엉겨 붙어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논다. 답답해 보여 “요즘같이 날 좋을 땐 나가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게 더 재밌지 않냐”고 말을 붙였다. “선생님, 여기가 더 자유롭고 재밌어요”라는 한 아이의 대답이 이어진다. 아이가 말한 ‘여기’는 바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가장 좋다는 마인크래프트(마크)라는 게임이다. 게임계의 레고로 불리는 마크는 반드시 깨야 하는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안에 임무를 달성할 필요도 없다. 태평양처럼 한없이 확장하는 거대한 세계가 있고 그 속에 내 캐릭터가 있다. 아이들은 마크를 하며 엄청난 자유도를 누린다. 함께 돌아다니고, 실컷 깨부수고, 맘껏 뭔가를 만든다.  


아이들에게 “현실세계에서 모험하는 게 더 재밌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현실에서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틈틈이 마크 하며 노는 게 우리 나름의 모험이에요.”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집-학교-학원의 조그만 수족관 속을 엄마 차, 학원 차에 실려 하염없이 돌고 또 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험은 마크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부모들도 할 말이 많다. 아이들끼리 돌아다니는 것은 일단 위험하다. 잠시 한눈팔면 언제 위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함께 모험을 떠날 친구도 없거니와 그렇게 했다간 무책임한 부모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문제가정으로 오인 받는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는 놀이터에서 집까지 약 1마일 거리를 자녀들끼리 걸어오게 한 부모가 방임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미 교통국에 따르면 1969년에는 48%의 아이들이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지만, 2009년에는 13%만 그렇게 했다고 한다. 점차 수족관에 아이를 두고 지켜보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헬리콥터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포럼에서 연사로 나온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님께 이 문제로 질문을 던졌다. 도서관과 마을을 연결시켜 사고하는 분답게 ‘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했다. 내가 어릴 적 위험하지 않았다고 느낀 이유도 ‘우리 동네’였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맞울림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알파고가 아니다. 결국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적당한 모험을 통해 위험에 대처할 힘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수족관을 깨고 우리 동네를 태평양으로 만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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