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이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안전하다는 걸 경험한 적 없습니다”- 김명선 심리치료사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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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안전하다는 걸
경험한 적 없습니다”

김명선 심리치료사

 

아동보호전문기관’이란 곳이 있습니다. 아동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슬프게도 ‘학대’로부터입니다. 수년째 경기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이들과 함께해온 김명선 심리치료사를 만나 아동학대와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6년 전국 아동학대 신고접수는 총 29,669건. 2017년에 들어 현재까지 경기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는 351건(7월말 기준), 실제 아동학대로 판명된 사례는 255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심리치료사로 일하게 되셨나요?
유아교육을 전공해 교사로 일하다가 부적응 아동의 적응을 도운 적 있어요. 그걸 계기로 아동 개개인의 특성에 관심을 가졌고, 아동심리학 학위를 땄죠. 병원 등에서 발달심리치료사로 일한 적 있고, 2014년부터 경기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놀이치료를 진행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다양한 장난감이 가득한 놀이치료실. 이 오래된 앵무새 장난감은 사실 녹음기입니다. 입을 잘 열지 않던 아이들이 개입 없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혼자 놀면서 앵무새 녹음기엔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한가요?
세상엔 힘든 환경의 아이들이 참 많아요. 아동학대는 크게 신체학대, 성학대, 정서학대, 방임 등으로 분류되고, 공격성, 위축, 불안과 우울, 부적응, 비행 등 학대후유증도 무척 증상이 다양해요. 신체학대가 많지만 밥 안 주고 학교에 안 보내는 식의 방임학대도 늘고 있어요. 심리검사를 거쳐 아이들마다 특성을 살펴 놀이나 미술치료 등 치료연계가 되는데, 저는 놀이치료 전공이에요. 이 아이들은 어디선가 안전하다는 걸 경험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 여기가 안전하구나.’ 아이에게 그런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죠. 주 1회 놀이치료 하는데, 수개월이 지나도록 말 안 하는 애도 있어요. 그만큼 내상이 크죠.


특히 어떤 아이들이 기억에 남나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요. 특히 학교 안 보내는 엄마, 폭력성향이 있거나 종교를 강요하는 부모의 아이가 생각나요. 아이는 또 이런부모들에게도 적응하려 애써요. 심지어 ‘힘들지 않아요, 저.’ 하고, 엄마가 떠날까봐 걱정하죠. 그러면 우리는 적어도 기본적 의식주라도 제공되는지 확인하려고 해요. 잠은 재우는지, 학교는 보내는지….12회기를 진행한 후 좋아진 아이도 있어요. 부모와도 왜 트러블이생기는지, 왜 이렇게 아이를 다루게 됐는지 확인하면서 부모와 아이 모두 좋아졌죠. 또 이제 고등학생인데, 계부의 성학대로 고통받던 아이가 있었어요. 36회기 치료 후 조금 안정을 찾았고 지금도 가끔 연락해요. 이 애한테는 정말 심리적 지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애착도 형성되지 않았고요. 지금은 아이에게 꿈도 생기고, 많이 나아졌죠.


심리치료사로서 특히 힘들 때는?
7회기까지만 하고 그만둔 아이가 있었어요. 아들만 편애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였는데, ‘아이가 지금 취약하니 비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부모한테 했거든요. 그 후 이제 여기 안 오겠다는 전화를 받은 적 있어요. 아이가 회복되는 게 보였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좀 더
제가 참았더라면 어땠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 때는 ‘무기력함’을 느낄 때죠. 양육환경의 변화가 안 따른다면 결국 치료를 받아도 아이 상황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가 이야기치료 중에 돌멩이로 마음을 표현한 작품. 반짝이는
돌은 ‘꿈’, 검은 돌은 방해요소, 글씨는 이야기치료 심리치료사가 한 메모입니다.


참 만만치 않습니다. 심리치료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고 기쁠 때는?
아이들은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 한 명만 만나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한 명만 만나도 정말 사회성도 떨어지지 않고 나아지거든요. 살아남으려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이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치료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이 내적 힘을 기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
습을 보게 되면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아이들의 변화는 보통 언제, 어떻게 시작되나요?
보통 4~6회기부터 아이들이 이제 “선생님, 같이 놀아요.” 마음을 열기 시작해요. 마음열기는 이제 서서히 부정적인 것이 표출된다는 걸 의미해요. 그 후 소꿉놀이나 병원놀이, 아이돌보기 같은 양육놀이를 아이들이 해요. 간혹 같이 논다는 게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어요. 누군가와 놀이해본 경험이 없어서예요. 보드게임도 하는데, 이 게임은 외부세계를 익히게 되는 놀이예요. 게임을 통해 자기조절을 배우고 사회적 규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기술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놀이치료는 어떤 역할을 하죠?
놀이는 바로 사회화를 준비하는 신호예요. 사실 학대당한 아이들은 신경생리학적으로 조절능력이 파괴된 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자기조절능력을 기를 기회가 없고 심리적 안정이 파괴된 거나 다름없죠. 그런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서서히 ‘내가 뭔가 할 수 있구나’ ‘내 삶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이 아이들은 학대 때문에 더 산만해지고, 과잉행동이 생기고, 의사소통, 사회성, 조절능력 등이 개발되지 못한 거거든요. 즉, 아이들이 안정을 취한 적이 없다는 거죠.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그 뿌리 깊은 무력감이 내면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놀이를 하면 조절능력이 생기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거죠. 놀이는 아이들의 언어거든요. 본능의 매개체가 되어 놀이치료가 자기치유의 역할을 해요.
또 처음엔 자동차, 군대놀이 하던 사내애들도 소꿉놀이, 음식만들기를 자연스레 하는 단계가 찾아와요.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를 먹이면서 돌봄, 대리양육을 경험해요. 아직 자기는 못 먹어요. 그 힘이 아직 없어요. 그러다가 내적 힘을 길러가는 거죠. 또 놀잇감을 고를 때
도 처음엔 아이들이 가장 자기가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 골라요. 그림그리기나 놀이가 그 역할을 하죠.


흥미롭네요. 특히 아동을 대하는 심리치료사에게 중요한 덕목은?
이 일은 작은 몸짓으로도 아이들한테 파장이 큰 일이라, 무엇보다 치료사도 자기점검과 자기격려가 필요해요. 번아웃 되지 않고, 치료적 접근을 잘할 수 있도록 계속 치료사례 공부가 필요하고요.


최근 아동학대가 늘어나는데,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중요한 지점은?
학대는 조기뇌손상이나 마찬가지로, 평생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래서 ‘아동학대는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신도 몰랐던 상처를 표현하고 내면의 힘을 견고하게 해준다는 모래놀이. 지금 어떤 아이가 모래를 만지며 내면을 찬찬히 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치료사는 세상 앞에 상처받고 홀로 앉은 아이 옆에 가만히 같이 앉아 끈질기게 아이를 기다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또 귀를 기울이면서.


글  이선희(커뮤니케이션부)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2010년부터 학대피해를 당하고 심리정서적 치료가 필요한 국내아동을 위해 심리치료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5곳, 그룹홈 2곳)에서 학대피해아동을 3,862명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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