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우울•불안 함께 넘어…”지금 기분이요? 무한대죠.”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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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불안 함께 넘어..."지금 기분이요? 무한대죠"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사업


 “(속에 있던 얘기를 조금 해보니까 어때요?) 힘든 일이 있으면 모아서 얘기할 곳이 생겼다는 게 좋아요…치료 받으니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건강 지원사업’ 참여 청소년)
불안, 우울, 게임중독, 대인관계 어려움… 위기 가정 아이들은 상담 한번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니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이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사업’을 시작한 까닭입니다. 그 효과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청소년, 부모 62명을 지원한 시범사업에서 점검했습니다. 김용석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 팀이 참여자 가운데 27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과 설문 조사 등을 벌여 평가했습니다.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 왜?
 한국에서 청소년으로 사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인 듯합니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에서 벌인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서, 지난 12개월간 심각한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묻자 남학생 9.5%, 여학생 14.9%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마음의 위기’에 전문가들은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김용석 교수 등은 보고서에서” 증상의 시작과 첫 치료 사이 기간이 늘어날수록 입원 재입원 기간이 더 길어진다”며 “정신질환의 시작을 분명히 할 수 없고 낙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서비스는 질환 발생 이전 단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한국에서도 보건의료기관 등에서 취약계층 청소년 정신건강을 위해 지원은 하고 있습니다만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중증정신질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조기 개입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지역 사회에서 밀착형 공공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희망복지지원단과 업무협약을 맺어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과 가족을 조기에 찾아 상담, 놀이, 약물 등 다양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 기관과 연계합니다. 담당자가 아이들과 부모 곁에서 어떤 상황인지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지속적으로 살핍니다. 참여자들은 어떻게 느꼈을 까요?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게”…불안, 우울 낮아져
실제로 지난해 심리치료 지원을 벌인 뒤 사전사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자인 부모와 청소년 모두 우울, 불안, 적대감 등이 낮아졌다고 답했습니다. 문제행동 총점(54.1050.50), 불안/우울(57.4056.20), 규칙 위반(54.80 53.60) 공격 행동(54.60 54.10) 낮아졌습니다. 주의 집중 문제도 개선됐습니다.(57.4054.60)


심층 인터뷰에서 참여자들 대부분이 스스로 변화를 갈망했지만 현실적인 걸림돌 때문에 엄두를 못 내왔다고 합니다. “기존에 알아보기는 했어요. 대체로 비용이…지원해 주시니까 저희는 너무 감사했죠.”(참여 보호자) 약물, 인지상담, 놀이치료, 가족상담 등 증상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상담이 지루하면 놀이를 하고, 그림 같은 걸로.”(참여 청소년)


이 사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 뿐 아니라 가족을 함께 지원한다는 점입니다. 김종열 서울 도봉구 청소년정신건강지원 담당자는 “게임중독에 우울증까지 있는 학생이 있어 매일 집으로 찾아갔다”며 “부모의 심리적 문제가 컸다는 걸 알게 됐고 부모 상담이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승원 심리치료사도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부모와의 관계”라며 “부모와 관계가 악화되면서 아이들이 방치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담 등을 받은 부모들은 전문가의 정서적 지지와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말문이 트이니 가족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지금 기분은요?) 무한대죠. (뭐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부모님. (부모님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 안마 해드렸어요. 그래서 아빠가 용돈을 주셨어요.”(참여 청소년) “(혹시 아빠가 달라진 것이 있나요?) 저희한테 잘 해줘요. 예전에는 때리고 그랬는데....”(참여 청소년)


일상도 변했습니다. 사례관리자가 참여 청소년들과 함께 일상의 목표를 정하고 점검했습니다.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게임 시간 줄이기, 청소하기 등입니다. 이를 달성하는 경험들이 자존감의 주춧돌이 돼 줬습니다. “계획한 것을 계속 해 나가니까 조금 더 끈기가... 평상시에 생활을 무언가 꽉꽉 채워가는 느낌이에요.”(참여 청소년)


참여한 부모들은 구직 등 실질적 도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약 먹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직장을 구하게 된 거죠.”(참여 보호자) 너무 많이 변화 되어서…아들이 늘 엄마랑 나랑 같이 죽어버리자, 자살하자고 했는데, 제가 부엌 칼을 몇 번 들기도 했고요. 지금은 자살 생각도 아예 없어요.”(참여 보호자)


부모나 청소년들이나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고 관심을 기울여 준다는 게 큰 위안이 됐다고 합니다. “마음이 그 전에는 항상 나 혼자 버려져 있는 느낌 있잖아요…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많이 다르더라고요.”(참여 보호자) 아이와 마음을 나눈 김혜지 심리치료사의 경험은 이랬습니다. “방문 잠그고 욕하던 아이가 공통 관심사를 나누게 되면서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취미를 공유하다 속마음을 말하고 그렇게 경계선을 넘었어요. 나중에 제게 감사 편지도 써줬는데 이건 기적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조기치료 하면 아이들은 정말 많이 좋아질 수 있어요. 지지 체계가 중요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올해도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사업’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전국 21개 시군구청 희망복지지원단과 함께 부모님과 청소년 60명을 돕습니다.


 김소민, 이선희(커뮤니케이션부) | 일러스트 박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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