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가족문제, 그게 잘 풀리는 게 올해 제 소원이에요”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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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문제, 그게 잘 풀리는 게 올해 제 소원이에요”
안산신나는그룹홈 아이들 인터뷰


안산 어느 환한 집, 현관벨이 울렸습니다. 한 소녀가 어른을 뒤따라 들어섭니다. 처음 온 곳, 걱정이 앞섭니다. 이곳은 학대피해 아동을 위한 ‘그룹홈’입니다. 2016년 한 해, 안산신나는그룹홈에서만 37명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있는 애들이 특이해요. 보통 손님 오면 자기네 방에 쓱 들어가 버리는데.(웃음) 사실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이들 이야기, 직접 듣는 기회는 이게 거의 처음일 거예요.” 조 원장님의 말입니다. “또 공부 좋다는 애도 처음이야.”(모두 웃음)
이 ‘획기적인’ 아이들은 바로 고1 수미와 미현이, 중2 송주입니다. 반짝이는 눈망울, 밝은 미소,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 신변보호를 위해, 아동 상황은 간략히 서술하고 가명을 씁니다.)



식탁에 모여 앉은 수미, 미현, 송주. 매일 속닥이고, 같이 뭔가 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반가워요. 다들 웃으니 좋네요. 처음 그룹홈에 왔을 때 어땠나요?
수미 저는 이제 고1이고요. 작년 *월에 여기 왔어요. 처음 여기 온 날이 엄마 생일이라 들어오기 싫었어요. **는 접근금지라 안 되지만, 엄마랑 **는 제가 원할 때 만날 수 있어요.
미현 저도 고1. 작년 *월에 들어왔고요. 처음엔 낯가리고 힘들었어요.
송주 이제 중2요. 여기 온 지 2주 정도라 지금도 낯설어요. 처음 왔을 때 많이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여기서 지내면서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은?
수미 다 같이 뭘 하거나 볼 때. 근데 학교가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미현 엄마랑 동생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요. 또 여기 친구들과 영화 보러간 거, 그게 제일 좋았어요.


싫어하는 건 뭐예요?
수미 성인 남자? 특히 술 취한 사람이 싫어요.
미현 물건 부수는 사람이요.
송주 난 수학.(모두 웃음)


여기서 지내면서 스스로 변화된 점이 있다면?
수미 아빠가 절대 학원에 안 보내줬거든요. 여기선 학원 다니니까 너무 좋아요. 여기 와서 공부하고 싶어졌다는 거!(웃음)
미현 원래 좀 주변사람 돕고 맞춰주는 편이었어요. 근데 원장샘이랑 말한 후부터는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려고 해요. 그게 바뀐 점?


(송주는 그동안에도 말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거북셈 엄마에게. 저는 밤마다 무서워요. 깜깜하고. 오늘은 거북셈 엄마랑 함께 있는 날이내요... 그리고 우리가 잘 때 거북셈 엄마가 톡닥톡닥해주새요 저는 밤이 너무너무 무서워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그리고 아이는 또 뒤에 덧붙여 씁니다. “꼭 이거 보고 답장 써주세요, 감사해요. 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심리치료사 선생님께 심리치료도 매주 한두 번 받는데, 괜찮아요?
수미 두 번 받아요. 속에 든 이야기 할 때, 울컥할 때가 있어서 좋아요. 가족사, 원래 전 말 안 했거든요. 근데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미현 마음속 답답한 게 많은데, 풀어져서 좋아요.
송주 선생님과 단둘이서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요.


같이 지냈던, 기억나는 친구도 있어요?
수미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가 술 먹고 학교에 찾아 온 적 있어요. 그때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여기 있던 중2 동생이랑 이야기해서 좋았어요.
미현 중3 동생요. 연락해요, 지금도.


올해 가장 하고 싶은 것? 혹은 가장 바라는 일은 뭐예요?
수미 가족문제, 지금 상황이 잘 풀리는 거요. 그리고 이런 곳(그룹홈)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기, 인원이 넘쳐서 저도 곧바로는 못왔어요. 쉼터에 있었는데, 기억이 안 좋아요. 아이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현 가족문제가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그룹홈에서 있었던 지 벌써 153일… 나는 화성에 가서도 여기에 있었던 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지낼 것이다.” 153일 넘게 그룹홈에 머물다가 떠난 아이가 남긴 글.


자, 조 원장님과도 조금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이들이 가족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나 봐요?

 (아이들, 모조리 거실로 도망쳐버렸습니다. 또 이야기 나누랴 간식 먹으랴 정신없습니다.)
원장님 가해자 부모는, 사건처리 때까진 접근금지예요. 그동안은 이런 시설에서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수행하고요. 가해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있어요.


후원이나 예산 측면에서 어떤 면이 좀 더 확보되면 좋을까요?
원장님 그룹홈에선 1차적 생활지원과 의료비, 심리적 응급처치, 학교생활지원에 우선적인 예산을 배정해요. 그래서 미술치료 등 치료지원, 진로활동, 체험활동, 학원비, 수술비 등은 후원이 있어야 운영하죠. 진로교육, 의료비, 환경개선 지원 등은 더 확보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수학 공부에 매진한 수미의 문제집. 아이들의 방. 말썽 피웠을 때 앉는 ‘반성의 의자’.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대한민국 아동학대 신고 15,000여 건.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았건만 닥쳐온 이런 아픈 상황을 조 원장님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교통사고”라고 했습니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다.” 13세기의 시인 루미가 남긴 문구입니다. 그 어떤 아이도 받아서는 안 될 상처가 교통사고처럼 생겨버렸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상처가 부디 잘 아물기를, 그리고 이미 생긴 상처가 사라지기 힘들다면, 차라리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깊고, 더 뜨겁고, 더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커뮤니케이션부 이선희 사진 정규민

                       


지난 2016년, 세이브더칠드런은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5곳, 그룹홈 2곳)을 통해 3,862명의 학대피해아동을 지원했습니다. 올해에는 추가로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을 더 개소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후원자님과 함께 아동학대가 영원히 사라지는 세상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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