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문제, 그게 잘 풀리는 게 올해 제 소원이에요”
안산신나는그룹홈 아이들 인터뷰
안산 어느 환한 집, 현관벨이 울렸습니다. 한 소녀가 어른을 뒤따라 들어섭니다. 처음 온 곳, 걱정이 앞섭니다. 이곳은 학대피해 아동을 위한 ‘그룹홈’입니다. 2016년 한 해, 안산신나는그룹홈에서만 37명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있는 애들이 특이해요. 보통 손님 오면 자기네 방에 쓱 들어가 버리는데.(웃음) 사실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이들 이야기, 직접 듣는 기회는 이게 거의 처음일 거예요.” 조 원장님의 말입니다. “또 공부 좋다는 애도 처음이야.”(모두 웃음)
이 ‘획기적인’ 아이들은 바로 고1 수미와 미현이, 중2 송주입니다. 반짝이는 눈망울, 밝은 미소,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 신변보호를 위해, 아동 상황은 간략히 서술하고 가명을 씁니다.)
▲ 식탁에 모여 앉은 수미, 미현, 송주. 매일 속닥이고, 같이 뭔가 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반가워요. 다들 웃으니 좋네요. 처음 그룹홈에 왔을 때 어땠나요?
수미 저는 이제 고1이고요. 작년 *월에 여기 왔어요. 처음 여기 온 날이 엄마 생일이라 들어오기 싫었어요. **는 접근금지라 안 되지만, 엄마랑 **는 제가 원할 때 만날 수 있어요.
미현 저도 고1. 작년 *월에 들어왔고요. 처음엔 낯가리고 힘들었어요.
송주 이제 중2요. 여기 온 지 2주 정도라 지금도 낯설어요. 처음 왔을 때 많이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여기서 지내면서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은?
수미 다 같이 뭘 하거나 볼 때. 근데 학교가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미현 엄마랑 동생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요. 또 여기 친구들과 영화 보러간 거, 그게 제일 좋았어요.
싫어하는 건 뭐예요?
수미 성인 남자? 특히 술 취한 사람이 싫어요.
미현 물건 부수는 사람이요.
송주 난 수학.(모두 웃음)
여기서 지내면서 스스로 변화된 점이 있다면?
수미 아빠가 절대 학원에 안 보내줬거든요. 여기선 학원 다니니까 너무 좋아요. 여기 와서 공부하고 싶어졌다는 거!(웃음)
미현 원래 좀 주변사람 돕고 맞춰주는 편이었어요. 근데 원장샘이랑 말한 후부터는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려고 해요. 그게 바뀐 점?
(송주는 그동안에도 말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 “거북셈 엄마에게. 저는 밤마다 무서워요. 깜깜하고. 오늘은 거북셈 엄마랑 함께 있는 날이내요... 그리고 우리가 잘 때 거북셈 엄마가 톡닥톡닥해주새요 저는 밤이 너무너무 무서워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그리고 아이는 또 뒤에 덧붙여 씁니다. “꼭 이거 보고 답장 써주세요, 감사해요. 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심리치료사 선생님께 심리치료도 매주 한두 번 받는데, 괜찮아요?
수미 두 번 받아요. 속에 든 이야기 할 때, 울컥할 때가 있어서 좋아요. 가족사, 원래 전 말 안 했거든요. 근데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미현 마음속 답답한 게 많은데, 풀어져서 좋아요.
송주 선생님과 단둘이서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요.
같이 지냈던, 기억나는 친구도 있어요?
수미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가 술 먹고 학교에 찾아 온 적 있어요. 그때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여기 있던 중2 동생이랑 이야기해서 좋았어요.
미현 중3 동생요. 연락해요, 지금도.
올해 가장 하고 싶은 것? 혹은 가장 바라는 일은 뭐예요?
수미 가족문제, 지금 상황이 잘 풀리는 거요. 그리고 이런 곳(그룹홈)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기, 인원이 넘쳐서 저도 곧바로는 못왔어요. 쉼터에 있었는데, 기억이 안 좋아요. 아이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현 가족문제가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 “그룹홈에서 있었던 지 벌써 153일… 나는 화성에 가서도 여기에 있었던 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지낼 것이다.” 153일 넘게 그룹홈에 머물다가 떠난 아이가 남긴 글.
자, 조 원장님과도 조금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이들이 가족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나 봐요?
(아이들, 모조리 거실로 도망쳐버렸습니다. 또 이야기 나누랴 간식 먹으랴 정신없습니다.)
원장님 가해자 부모는, 사건처리 때까진 접근금지예요. 그동안은 이런 시설에서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수행하고요. 가해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있어요.
후원이나 예산 측면에서 어떤 면이 좀 더 확보되면 좋을까요?
원장님 그룹홈에선 1차적 생활지원과 의료비, 심리적 응급처치, 학교생활지원에 우선적인 예산을 배정해요. 그래서 미술치료 등 치료지원, 진로활동, 체험활동, 학원비, 수술비 등은 후원이 있어야 운영하죠. 진로교육, 의료비, 환경개선 지원 등은 더 확보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 수학 공부에 매진한 수미의 문제집. 아이들의 방. 말썽 피웠을 때 앉는 ‘반성의 의자’.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대한민국 아동학대 신고 15,000여 건.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았건만 닥쳐온 이런 아픈 상황을 조 원장님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교통사고”라고 했습니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다.” 13세기의 시인 루미가 남긴 문구입니다. 그 어떤 아이도 받아서는 안 될 상처가 교통사고처럼 생겨버렸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상처가 부디 잘 아물기를, 그리고 이미 생긴 상처가 사라지기 힘들다면, 차라리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깊고, 더 뜨겁고, 더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글 커뮤니케이션부 이선희 사진 정규민
■ 지난 2016년, 세이브더칠드런은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5곳, 그룹홈 2곳)을 통해 3,862명의 학대피해아동을 지원했습니다. 올해에는 추가로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을 더 개소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후원자님과 함께 아동학대가 영원히 사라지는 세상을 위해 일하겠습니다.